2015년 겨울, 평생 비참하게 살았던 한 여성 '봄순'이 평양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고 자신의 목숨도 잃는다.
그렇게 이 세상과 바이바이 하는가 싶었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1998년 신혼 무렵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봄순은 과거로 돌아왔다.
화폐개혁, 장마당의 탄생, 시장경제의 활성화 등 미래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두 아는 상태로.
이 작품은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뚫고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봄순은 온갖 노력 끝에 받은 훈장을 팔아 마련한 밑천으로 떡 장사를 해 종잣돈을 마련하고, 그 종잣돈으로 주유소를 세워 큰 돈을 번다.
봄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항생제 제조까지 뛰어들어 돈을 쓸어담는다.
하지만 자신보다 잘 나가는 봄순에 열폭한 남편이 불륜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치는데 이어 그녀의 돈을 가로채고자 모함한다.
모든 걸 잃고 감옥에 갇혀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신세에 놓이는 봄순은 과연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고 무대를 북한으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의 디테일은 <재벌집 막내아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여성의 지위, 부패의 끝을 달리는 공산당 간부들의 탐욕, 죽지 못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생활상 묘사가 마치 눈앞에서 바라보듯 생생하다.
일부 언론이 출처 불명의 정보로 쓰는 북한 관련 기사들이 우습게 보일 정도다.
작가 이름이 예사롭지 않아 이력을 살펴보니 탈북자 출신이다.
이러니 디테일이 엄청나지.
탄탄한 장편이라는 말은 솔직히 못하겠다.
과거로 회귀한 이유에 관한 설명이 전혀 없는 등 허술한 부분이 보이고, 문장도 굉장히 거칠다.
출판사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 봤을 정도다.
하지만 엄청난 디테일이 이 모든 단점을 덮는다.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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