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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백수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10. 29.

 



출간 당시 구입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작품이다.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백수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이 나와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읽을만했다.
그랬는데도 왜 이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책 표지 중에 이 작품 표지보다 예쁜 건 없었다.
문학동네가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감탄하며 책날개를 보니, 주유진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후 웹서핑으로 주 작가의 그림을 찾아 자주 감상하곤 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주 작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돌이켜 보니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여름의 빌라>도 표지에 혹해 구입했었다.

사설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백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어린 시절에 사고로 언니를 잃은 주인공은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그곳에서 파독간호사 출신인 여러 '이모'들과 인연을 맺는다.
주인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중 한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다.
그 과정이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데, 섬세하고 따뜻한 기운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아서 인상적이었다.

언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서툰 거짓말 때문에 쌓인 죄책감이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수수께끼가 풀릴 때 함께 시원하게 풀리는 서사 구조를 보며 감탄했다.
주인공의 뒤늦은 사랑 찾기도 예뻤고.
작가가 정말 많이 고민하며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잘 몰랐던 파독간호사의 삶과 당대 사회상도 엿볼 수 있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덕에 구체적인 사건과 서사가 엮여 작가가 지금까진 쓴 단편소설보다 훨씬 쉽게 눈앞에 이미지가 그려졌다.
안미옥 시인의 추천사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다음에는 백 작가의 작품을 표지에 혹해 구입하지 않고,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할 것 같다.

p.s. 다만 반전은 내겐 조금 아쉬웠다.
작품을 반도 읽지 않았는데 반전이 예상됐고,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게 반전이었다.
그건 아니길 바랐는데...
하지만 그 반전이 아니었다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테지.
스포라서 더 말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