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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정아은 산문집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마름모)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10. 31.

 


연희문학창작촌에서 퇴실한 후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11월에 소설 쓰기를 주제로 다룬 산문집을 낸다.
공교롭게도 이보다 먼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산문집이 나왔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다른 신간을 모두 제쳐두고 이 산문집부터 읽었다.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앉은 자리에서 소변도 참아가며 다 읽었다.

나도 그랬지만 많은 작가 지망생이 착각한다.
큰 문학상을 받아 작가로 등단하면 명예와 수입이 따라올 거라고.
그런데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
진짜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이 책을 쓴 작가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화려하게 등단한 후 명예와 수입을 기대했다.
하지만 단행본이 기대보다 팔리지 않고, 급기야 원고를 거절하는 편집자의 메일을 받는 일까지 겪으며 멘붕에 빠진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거절메일 1', '거절메일 2' 파트에 당시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읽으면서 PTSD가 오는 기분을 느꼈다.
거절당한 경험은 작가보다 내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 횟수는 상관없다.
거절당한 후 느끼는 자괴감은 늘 새로우니 말이다.
이후 작가는 틈만 나면 기성 작가의 원고 거절 사례를 찾고자 웹서핑하며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위안은 잠시뿐, 자괴감이 텍사스 소 떼처럼 밀려 들어와 자신을 괴롭힌다.

그런 자신이 더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진로 변경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자신이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현실을 회피해 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쓰는 게 좋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뿐이란 걸.
명예와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쓰는 일 그 자체라는 걸.
자신을 쓸 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걸.
자신이 쓰는 이유는 고급지게 '잘' 인정받기 위함이라는 걸.
그리고 작가는 다시 작가로 태어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작법서의 성격, 후반부는 에세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전반부가 흥미로울 테다.
특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많이 써봐야 한다, 끝까지 써야 한다, 초고를 빨리 써야 한다 등의 조언은 정말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소설 쓰기는 정말로 그게 전부이니까.
현직 작가는 후반부에 많이 공감할 테다. 
후반부를 읽으며 작가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는 건가 싶어서 읽는 내내 많이 웃었다.
가끔 나만 이런 찌질한 생각을 하며 사는 건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산문집을 통해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님을 확인해 큰 위로가 됐다.
작가 지망생이나 현직 작가가 아니어도 읽으면 재미있을 훌륭한 직업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