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입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뒤늦게 읽은 소설집이다.
몇 년 전 작가의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었는데,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내겐 심심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소설집이 독서 목록에서 자꾸 밀렸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연희문학창작촌에 들고 갔는데, 퇴실일자가 가까워져 오는데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퇴실해 집으로 돌아오면 읽을 책들이 쌓여있을 게 뻔해 다시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바람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자기만의 걸음을 걷고, 천천히 주위와 소통하며, 천천히 상처를 보듬을 뿐이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아파도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을 회복해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늦게 읽었지만, 좋았다.
내가 읽었던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배경 위에 쓰인 따뜻하고 섬세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별로 대단한 사건이 아닌데, 읽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극적이지 않아 보이는 데 극적이고, 애틋하지만 신파스럽진 않다.
표제작의 제목이 소설집 전체를 정말 잘 아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지인에게 괜히 연락해 멋쩍은 목소리로 "별일은 없고요?"라고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다정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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