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어떤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출처가 가물가물했다.
어디서 읽은 문장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은 시인의 시집에서 본 듯했다.
시집을 꺼내 첫 장부터 훑어보다가 거의 다 읽을 때쯤 되자 그 문장이 나타났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통찰하는 문장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웃길 때 웃지 못하고/화날 때 화내지 못해서/우리의 얼굴은 어색하다"('시끄러운 얼굴' 中)
시집을 꺼낸 김에 더 읽다 보니 다른 문장도 눈에 들어왔다.
"만날 때는 안녕하고 싶어서 안녕/헤어질 때는 안녕하지 못해서 안녕"('기다리는 사람' 中), "네 얼굴을 통해서/내 얼굴이 보고 있다/내 얼굴을"('시끄러운 얼굴' 中) 같은 문장이 좋았다.
그러다가 책을 덮는데 문득 출판사 이름이 보여 기분을 잡쳤다.
2년 전 나는 며칠 동안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들고 직접 문학을 다루는 동네서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했었다.
그중 한 서점이 아침달이었는데, 책방지기가 나를 잡상인 바라보듯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홍보 책자와 명함을 두고 나온 것뿐인데 말이다.
그때 책방지기의 건조한 반응 때문에 마음에 생긴 스크레치가 꽤 오래갔었다.
그 경험 때문에 이후 신간을 들고 동네서점을 돌아다니는 일은 그만뒀다.
그때 기분을 시집에 실린 문장으로 대신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뒤를 돌아보니 선이 그어져 있었다. 넘고 나서야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선을 긋는 사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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