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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경준 <카펜터스>(그래서음악)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12. 3.

 



내가 카펜터스(Carpenters)에 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Top of the world' 'Yesterday once more' 등 멜로디가 좋은 히트곡을 여럿 가진 미국 출신 남매 듀오라는 게 내가 아는 전부다.
카펜터스가 활약했던 시대는 1970년대이고, 나는 그때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자세히 아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다.
달달한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그런데도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는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등 저자의 전작을 읽으며 쌓인 신뢰 때문이다.
지금까지 록을 주로 다뤄온 저자가 의외의 뮤지션을 다룬 단행본을 냈다면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 평전은 카펜터스의 멤버인 캐런 카펜터와 리처드 카펜터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들의 음악 여정에 담긴 의미를 친절하게 짚는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다양한 참고 자료와 문헌이 생생함을 더하고, 저자는 애정을 담은 사견을 곳곳에 보태며 추임새를 넣는다.  
나는 음악 관련 책을 읽을 때 늘 그래왔듯이, 이 평전을 읽을 때도 카펜터스의 앨범을 연대기 순으로 들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놀라웠다.
과장을 보태자면 카펜터스의 노래 대부분이 내 귀에 익었다.
듣다가 "이게 카펜터스의 노래였어?" 하며 노래를 다시 확인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는 내게도 카펜터스의 노래가 이렇게 익숙한데, 프로 뮤지션들의 귀에는 오죽할까.
실제로 이 평전은 활동 당시 평론가들에게 평가절하당했던 카펜터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재평가받았으며, 오늘날에는 수많은 뮤지션이 카펜터스의 열혈 팬을 자처하고 있음을 밝힌다.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는 카펜터스가 당대 어떤 뮤지션보다 솔직하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했고, 그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비난을 받아왔다고 변호한다.
카펜터스를 잘 몰라도 괜찮다.
이 평전에 실린 플레이리스트가 가이드 역할 해줄 테니 말이다.

이 평전을 읽는 내내 나는 엉뚱하게도 밴드 본 조비(Bon Jovi)를 떠올렸다.
몇 년 전 본 조비 내한 공연에 갔을 때, 나는 밴드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
본 조비는 학창 시절 내게 '겉'으로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순수한 헤비메탈 세계에 감히 팝을 몇 방울 떨어트린 부정한 존재.
하지만 본 조비의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간증하듯 더 센 음악으로 본 조비를 씻어내곤 했다.
시간을 거슬러 학창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면,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며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Kill Bon Jovi 외쳤던 밴드들 다 죽었다 이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