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 문학계에서 보이는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소설이 과거에 없진 않았지만, 최근에 노동을 다루는 소설은 노동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을 강조했던 과거 노동 소설과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현실에 발붙인 서사를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땀 흘리는 소설을 편애한다.
그런데 그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부 노동 현장이 비어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동인 막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이는 나를 포함해 작가 대부분이 막노동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일이 드물고, 막노동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자기 경험을 굳이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생 막노동을 한 아버지는 내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힌 일이 없다.
최근에는 나재필 작가의 <나의 막노동 일기>,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 같은 산문집이 소설의 공백을 채우는 모양새다.
막노동만큼이나 소설에서 소외된 노동 현장은 전문직, 그중에서도 여성이 전문직으로 일하는 현장이다.
언젠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문제를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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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아들은 중상을 입은 채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응급실에서 의사가 소년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수술 못 해요. 이 소년은 내 아들입니다.”
의사는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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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정답은 "의사가 아들의 어머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답을 찾지 못한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자연스럽게 남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한 기분을 느꼈다.
전문직 종사자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이 연작소설은 여성 전문직이 일하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다룬, 현재 한국 문학계에서 매우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 연작소설에 실린 주인공은 미국에서 한국의 법대로 스카웃된 교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센터장, 비엔날레 예술 감독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꽤 높은 대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직업군이다.
다들 우아한 삶을 살 것만 같은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마다 겪는 고충이 만만치 않다.
상대방이 대놓고 막 나가면 소리 높여 따지기라도 할 텐데, 점잖은 척 말의 칼로 푹푹 찔러대니 속수무책이다.
주인공들은 부조리를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힘을 키워 더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이용해야 하며, 사랑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기 싫어도 알아나간다.
여성가족부의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4급 이상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17.8%로 2010년(6.3%)에 비해 11.5%포인트 상승했다.
공공기관, 지방공사와 지방공단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도 2010년 15.1%에서 2020년 20.9%로 상승했다.
고위직 및 전문직 여성 종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소수라는 점은 변함없다.
정책을 결정하는 집단의 다수가 동질하다는 건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다수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소수를 자연스럽게 소외시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백날 그런 분석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쏟아내 봐야 보통 사람은 공감하기 어렵다.
나는 소설이 공감대 형성을 위한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읽기는 가장 저렴하게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보고서를 읽고 분석하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다.
특히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에게 이 연작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덤으로 작가의 전작인 장편소설 <백오피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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