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포르투갈 전 총리 같은 독재자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 등장하는 '피의 그믐날'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이 작품 속 대한민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몇 차례 더 벌어지고 경제 위기가 심각해진 204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적당히' 무너진 세상을 겨우겨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그린다.
작품 속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 수준은 계란 한 알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거보다 열악한데, 디스토피아라고 부르기엔 뭔가 하찮다.
천천히 침몰하는 거대한 배, 천천히 끓는 물 속 개구리 같은.
지속된 경제 위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낮은 출생률은 더 낮아지고 노년층이 급증하자 정부는 독신세 부담을 점점 늘린다.
이 같은 설정을 소설로만 받아들이긴 곤란하다.
대한민국은 이미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각종 소득공제를 더 받는, 소극적 형태의 독신세를 거둬들이고 있다.
또한 여기저기서 독신세 논의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독신세라는 이름은 아니어도 사실상 독신세 역할을 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작품 속 대한민국 국민은 '집합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뤄 독신세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집합가족의 결은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과 다르다.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과 달리 집합가족은 서로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고 동시에 실제 가족과 같은 유대 관계를 소망한다.
그러다 보니 집합가족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 '무도회장'은 늘 눈치 싸움으로 바쁘다.
이게 과연 소설로만 그려질 미래일까?
미리 미래를 엿본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과일 한 번 먹는 게 연례행사와 다름없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열악한데도, 대놓고 정부에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부가 언론을 극도로 통제하고, 공연하게 재력을 과시하는 행위를 막아왔기 때문이다.
이웃이 모두 가난하고 부자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니 비교 대상이 없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마치 중국의 현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국은 최근 SNS에 재력을 과시하는 행위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사라질까?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호의호식하며 살지 않을까?
이 작품 역시 부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은밀하게 더 큰 부를 쌓고 있음을 수시로 암시한다.
그것도 지독하게 불법적이면서 비윤리적으로...
이 작품은 언로를 막은 자본 독재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어떤 살풍경이 벌어지는지를 담담하고 서늘하게 묘사한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변화와 희망의 시작은 개인이라고 이 작품은 강조한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소 심심한 마무리이지만, 이 마무리보다 더 나은 마무리를 상상하긴 어려웠다.
결론은? 투표를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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