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조림, 순간, 아욱국, 고등어조림, 땡초전, 양꼬치, 골뱅이무침, 순두부, 취하, 오징어볶음, 아귀찜, 청국장, 굴국, 동태찌개, 김치찌개, 깻잎전...
읽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아는 맛들이 크고 작은 일상과 버무려져 시어로 펼쳐지니, 읽으면 괜히 배가 고파지고 기분이 짠해지는 시집이다.
달아오른 숯에 닿은 양꼬치 기름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양꼬치), 매콤한 감자 짜글이를 먹으며, 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내려오던 길을 떠올린다(감자 짜글이).
때로는 시 자체가 레시피이기도 하다.
오징어볶음을 만들 땐 식감 살리기 위해 1.5센티 몸통과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조언하고(오징어볶음), 개성 강한 재료를 하나로 묶어 전으로 만드는 재료는 계란(깻잎전)이라는 식으로.
시집을 덮으며 누렇게 변해 들뜬 벽지와 그 벽지에 튄 김칫국물, 그 남루하지만 따뜻한 방안에 놓인 양은밥상을 떠올렸다.
정겹고 괜히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풍경이다.
시집은 소설책보다 얇지만,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소설책보다 두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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