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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4. 30.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림 동화>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그림 동화>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세상을 민증도 없이?(손톱)

이 밖에도 꽤 무거운 주제를 가진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엄마를 잃은 새끼 고양이에겐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마중), 사람에게도 까다로운 난민 심사를 외계인이 통과할 수 있을까(심사),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갔던 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라이카), 호랑이를 비롯해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호랑이와 아이).

과거에 잔혹한 민담이 동화로 읽힌 이유는 아이를 교정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마디로 동화는 아이에게 세상의 잔혹함을 미리 알려주는 교재였던 셈이다.
뭐 저 멀리 <그림 동화>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콩쥐 팥쥐> 같은 이야기만 살펴봐도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인가.

그렇다고 이 동화집 속 이야기가 마냥 잔혹(?)하진 않다.
늙어서 치매에 걸려도 세상을 떠난 주인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개의 모습과(늙은 개), 세심한 눈으로 학대받는 아이의 사정을 파악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른의 모습은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이 동화집을 읽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지, 아니면 다른 기분을 느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