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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석원 산문집 <어떤 섬세함>(위즈덤하우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5. 4.

 



이석원, 참 대단한 작가다.
그가 소설가로서 좋은 작가인지는 의문이지만, 에세이스트로서 좋은 작가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음악으로 경지에 오르고, 산문으로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소설까지 잘 쓰면 반칙이지.
감상문을 쓰다가 허접해서 지우고 대신 읽다가 좋았던 문장을 발췌해(일부는 적당히 수정해서) 옮긴다

-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아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사는 일이 가능하다.

- 왜 어른들이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느니, 그러니까 젊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좋다느니 하는 지를 알 것 같다.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는, 또 마흔 살의 나와 쉰 살의 나는 그 모든 순간이 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흡수하는 감각도, 원하는 종류의 자극도, 그간 쌓아왔던 경험의 종류도 다 달랐으니 말이다.

- 진심이라고 해서 무조건 누구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다.

-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삶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라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 관계에 있어서 솔직함이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솔직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버리면, 관계는 오히려 종말을 고할 수 있다.

- 누군가와의 관계를 영영 끊어낸다는 의미의 그 '손절'이라는 카드를 너무 간편하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어느 순간, 당신 주위에는 정말로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카드를 신중하게 잘 쓰기만 한다면, 인생에서 불필요하게 상처받는 일도 줄이면서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방식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을 손가락질하기는 정말 쉽거든?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그 손가락질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도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