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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4. 29.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불편한 편의점>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읽으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훨씬 커졌으니 말이다.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
마치 <망원동 브라더스>의 주인공들이 옥탑방에서 벗어나 오만 군데를 쏘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화동, 성심당, 대전천, 목척교, 진로집, 신도칼국수, 유성온천...
내 고향 '노잼도시' 대전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고향인 대전의 풍경이 겹쳐서 정말 반가웠고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올해 대전시민이 함께 읽을 책'에 선정될지 모르겠다.
이뿐만 아니라 주인공 일행이 가게 주인을 추적하며 들르는 서울역 부근, 통영 다찌, 함덕 해변, 제주 선흘리도 모두 내게 익숙한 공간이어서 읽는 내내 마치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급기야 소설은 <돈키호테>의 본고장 스페인까지 무대를 넓히며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꿈을 향해 마음을 다해본 적 있느냐고.
지금처럼 사는 데 만족하느냐고.
식상한 질문인데 낯선 곳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니 새롭게 들린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털어놓는 비디오 가게 주인의 고백을 읽고 울컥했다.

"여기 대형 서점 말이야, 마치 거대한 책들의 묘지 같아. 아주 서늘해. 책들이 저마다 자기 무덤 자리에 고이 누워 있다구. 웃기는 게 돈을 더 내면 큰 무덤을 주고 돈이 없으면 여기서 좀 누워 있다 파묘되어 죽은 듯 서 있게 되겠지. 나 있잖아, 그게 너무 무섭다. 내 모든 걸 담은, 세상을 뒤집을 책이 그냥 종이로 만든 좀비가 되어 여기 서 있게 된다고. 솔아, 너는 책을 안 내봐서 모를 거야. 내가 네 방송에 나간다고, 출판사에서 홍보하라고 해 쪼르르 간다고 책이 팔리겠니? 나는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의 운명을. 이러다 서점에서 사라지고 대여점에 혹은 도서관에 꽂힌 채 가끔 돈키호테를 좋아하거나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선택해 주면 좋을, 그 정도 삶을 살려고 한다."(410페이지)

가게 주인의 고백이자 작가 본인의 고백일 테다.
작가인 독자라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고백이다.
이 고백을 읽고 나도 돈키호테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책을 냈지만, 그 책들 모두 대형서점 신간 매대에 잠시 머물다가 '책들의 묘지'로 향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작가로 사는 걸 후회하진 않는다.
쓰는 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의 클로징 BGM으로 김동률의 '황금가면'을 재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