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히는데, 이 글은 시집 바깥 이야기가 더 많은 잡설이다.
그리고 나는 시를 잘 모르니 너무 진지하게 읽진 마시라.
시간은 202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문학 담당 기자로 신춘문예와 관련한 크고 작은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다른 신문사의 새해 첫 지면에 실린 당선작을 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중 한국일보 지면에서 시인의 이름을 처음 봤다.
그땐 그냥 지나쳤던 이름인데, 얼마 후 그 이름이 여러 뉴스에 실려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인은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모아 펴내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작품 싣기를 거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 했을 테다
당선작을 모아 내는 출판사 측 인사가 미투와 엮여있든 말든 일단 지면에 당선작을 실어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중에 시인은 원고료를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도 거절해 화제를 모았다.
자칫하면 까다로운 신인으로 찍혀서 청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명 문학 출판사에서 시집을 출간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던 걸까.
닳고 닳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용기다.
그 이후엔 내 코가 석자여서 시인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솔직히 시에는 별 관심이 없기도 했고.
그러다가 지난해 느닷없는 부고로 그 이름을 다시 들었다.
부고라니...
고작 20대 중반인데 세상을 떠나다니.
재능있는 청년이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때뿐이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무슨.
그러다가 또 느닷없이 시인의 이름을 다시 접했다.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작이 나온다는 소식으로.
그 소식을 듣고 떠올린 건 뜬금없지만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첫 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시인의 첫 시집도 유재하의 첫 앨범처럼 대단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며 바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시집을 넣었다.
이 시집에 관해 평가할 말은 별로 없다.
시도 모르는 놈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나를 펼쳐주세요 나는 줄줄 흐르고 싶어요 강이 될래요 바다가 될래요 마그마가 될래요"(독서유예), "지옥에는 풀이 없다던데/지옥에는 햇빛이 없으니까/지옥에는 초록이 없으니까/그렇다면 내 방은 이미 지옥이구나"(그러나 풍경은 아름답다) 같은 문장을 읽었을 때 눈물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바깥으로 흘러나왔다는 감상 정도는 남기고 싶다.
김기태 작가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더불어 올해 계속 여러 독자의 입에 오르내릴 책이 되지 않을까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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