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닌 어딘가(아마도 미국?)의 풍경, 배경에 깔린 어스름한 새벽의 박명, 소설집의 제목을 담은 간판.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보니 소설들과 잘 어울리는 표지다.
소설집을 읽기 전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표지인데, 읽은 후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지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가 원래 의도한 제목은 이 제목이 아니었나 보다.
편집 과정에서 제목이 바뀐 건 탁월한 선택이다.
소설집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 모두 고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의 설렘과 불안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작가의 전작인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처럼 단편 대부분이 작가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쓴 듯 현장감이 상당하다.
장편보다 유머(라고 쓰고 허무 개그)는 덜하지만 잔향은 길어서 오래 페이지를 붙잡게 한다.
한국 소설에서 부족한 부분을 꼽으라면 한국이 아닌 장소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 드물다는 점인데, 작가는 꾸준히 타국을 배경으로 '디아스포라' 문학을 선보여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고향을 떠났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아이러니한 심리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냐고.
만약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이런 질문이 굉장히 심심하게 다가왔을 테다.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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