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 전쯤 일이다.
학교에서 반지하방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채 괴로운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을 하다가 원형톱에 검지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다급히 봉합수술을 시도했지만 잘린 부위의 오염이 심해 실패했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침통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안 그러면 이렇게 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당시 당한 사고는 엄연히 산재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고 책임을 본인에게 돌릴 뿐, 일터에 묻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근무 환경이 어떻든 간에 사고는 본인 책임이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 들러 영정 앞에서 절하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손가락 10개가 모두 성한 분이 드물었다.
그분들이 일터에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야만의 시대였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몇 년 전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로 일하며 기획 기사 아이템을 찾으려고 각종 통계를 뒤졌는데, 산재 발생 건수 및 사망률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매년 낮아지는 추세이긴 했지만,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았다.
산재를 당했지만 신청할 수 없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은 건수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은 산재와 직간접적으로 엮인 17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한 희곡이다.
이 작품의 '작가 노트'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통계는 아무리 자릿수가 많아도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런 통계를 인용하는 기사 역시 잘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통장에 숫자로만 찍혀 있는 1000만 원보다 내 주머니에 있는 10만 원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증언, 재판, 청문회 속기록 등 실제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편집해 엮어서 드러내기 때문에 희곡이지만 희곡이 아닌 실제 상황 같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는 인터뷰이를 역할을 하지만 인터뷰이와 거리를 둬서 연기이되 연기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그동안 통계에 가려져 있었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실제 인터뷰이의 녹취 음성이 재생되는 가운데 2023년 3월에 일어난 산재 사망 기록이 자막으로 길게 이어진다.
직접 세어보니 무려 66건이다.
그리고 그 위로 자막 하나가 오버랩돼 무거움을 더한다
2,223/130,348
2022년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다.
'작가 노트'의 서두에 적혀 있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말이 다시 무겁게 울린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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