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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최유안 장편소설 『새벽의 그림자』(은행나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7. 2.

 



작가는 지금까지 소설로 다뤄졌을 법한데 다뤄지지 않은 소재로 자기 영역을 개척해 왔다.
여성 직장인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일과 직장의 의미를 물었던 장편소설 『백 오피스』,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전문직 여성의 고뇌를 담은 연작소설 『먼 빛들』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최근에는 소설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통일과 탈북자 문제에 주목했다.
시베리아 벌목장을 배경으로 다룬 장마리 작가의 장편소설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외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최근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근 한국 문학에선 낯선 주제다.
아무래도 청년세대에게 잘 와닿지 않는 문제라는 게 소설로 다뤄지지 않았던 이유일 테다.

남북이 갈라져 사실상 다른 나라로 자리잡은 지 70년이 넘었다.
청년세대는 북한을 가끔 미사일을 쏘거나 오물풍선을 날리며 도발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고, 심지어 통일을 당위로 여기는 사람을 '틀딱'으로 취급한다.
작가가 이 문제에 핀 조명을 비추기 위한 선택은 낯선 곳에서 바라보기다.

작가는 독일에 정착한 탈북 여성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전직 경찰 출신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통일과 탈북자 문제를 파고든다.
주인공은 마치 수사를 하듯 의문사의 배경을 추적하고, 자연스럽게 분단 문제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고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반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남한 출신 교민이 경험했던 경계인의 삶,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탈북자의 아슬아슬한 삶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온다.

작가는 한반도에 발붙이고 사는 한민족의 문제를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해 보여준다.
그 끝에서 나는 누군가의 삶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로 불행해져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다른 독자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구름이 잔뜩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본 기분이 들었다.
가본 적도 없는 독일의 하늘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책을 덮을 땐 두꺼운 구름을 뚫고 가느다란 빛이 땅에 닿는 풍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