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은 청년세대와 주변인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때로는 지적으로, 때로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집의 전반적인 톤은 우울하고 권태롭다.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청년 근로자가 고통에서 벗어기 위해 펜타닐에 손댔다가 더 큰 고통을 받기도 하고(우리는 깊어서), 엿 같은 근무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해서 도달한 곳도 별다를 것 없다(빌어먹는 사람들을 위한 시선집). 차라리 극적인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어제와 같고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다(끝없이 이어지는 긴 담배와 하얗게 내려앉은 밤).
가끔은 자기 목표를 위해 남을 도구 취급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있다(문학의 정수).
그런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조짐은 있다.
항공우주센터 소속 계약직 청년과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벌이는 캐치볼의 포물선 운동은 우주왕복선의 포물선 운동으로 확장돼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포물선).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다가 고립된 청년은 사랑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고집스러운 기준이 흔들리고(천체물리학 궤도상의 사랑 좌표), 큰누나의 죽음 때문에 소원해진 작은누나와의 관계는 시소 타기로 변주돼 데면데면하면서도 애틋한 풍경을 자아낸다(시소).
불완전하지만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사람과 화해도 하고, 작지만 소박한 희망도 가슴에 품는다(포튈랑).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인서울 4년제 종합대학 전체 정원은 전국 대학 정원의 12%에 불과하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기업(300인 이상)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고작 13.9%다.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에 서울과 대기업만 존재하는 것 같고, SNS는 인서울 주요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녀야 평균인 것처럼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평균 올려치기' 바깥에 있는 청년세대 다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그들의 삶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집을 통해 소외된 다수에 속하는 요즘 청년들의 우울과 불안을 다각도로 엿볼 수 있었다.
앉아서 머리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어서 세대는 달라도 충분히 와닿았다.
좋은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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