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그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 때 믿었던 사람에게 자기 작품을 빼앗긴 채 비통하게 생을 마감하며 역사 속에 묻힌 여성 작가, 그리고 그 작가의 생애를 추적하고 진실을 밝히는 현재의 여성 작가, 이 둘을 이어주는 퇴마사라는 기묘한 존재와 시공간을 오가는 전개.
설정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대단히 많다.
익숙하고 잘 아는 걸 쓰려는 건 작가의 본능이니, 작가가 자기 삶을 모티브로 소설을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작품, 읽다 보면 뭔가 다르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단순히 작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흔한 설정을 가진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의 타깃 독자는 작가다.
작가가 작가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니 신선하고 도발적이지 않은가?
자기 글을 진지하게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은 뒤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 다른 소설을 읽었을 때와 비교해 매우 다를 테다.
이야기의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고(158페이지), 누구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만 끝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가 된다(217페이지)는 말.
작가가 아니면 진심으로 쓸 수 없고, 작가가 아니면 진심을 느낄 수 없는 말이다.
작가인 독자라면 누구든 이 작품을 읽은 후 자기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이 작품을 읽고 오랜만에 퇴사 후 전업작가로 나섰던 4년 전 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누구도 내 새로운 작품을 원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 어떤 청탁도 없었다.
아무런 기약도 없는데 어떻게 나는 소설을 쓰겠다고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었던 걸까.
좋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소설을 쓰며 살고 싶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열심히 쓴 소설이라고 해서, 잘 쓴 소설이라고 해서 팔리는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나 독재정권 때처럼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도 아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최소한 무엇이든 쓰고 싶은 바를 쓸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퇴사 당시 먹었던 마음을 오랜만에 되새길 수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작품이었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화진 장편소설 『동경』(문학동네) (0) | 2024.07.09 |
---|---|
이미예 소설 『탕비실』(한끼) (0) | 2024.07.09 |
박하신 소설집 『여기까지 한 시절이라 부르자』(문학수첩) (0) | 2024.07.08 |
김이설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자음과모음) (0) | 2024.07.04 |
이철 희곡집 『산재일기』(아를) (0) | 202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