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행본 1만 부가 팔리면 한국 문학의 기대주, 10만 부가 팔리면 올해의 한국 문학, 100만 부가 팔리면 '역사'로 취급받는다.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등 21세기 들어 100만 부 이상 팔린 한국 소설을 헤아리는 데에는 열 손가락으로도 남는다.
이미예 작가의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대한민국 출판시장에서 몇 안 되는 '역사' 중 하나다.
그만큼 작가의 후속작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떤 작가의 후속작보다 클 수밖에 없고, 작가 역시 부담이 컸을 테다.
전략은 둘 중 하나일 테다.
히트작의 장점과 강점을 살려 기조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전작과 다른 새로운 걸 보여주느냐.
작가의 선택은 후자다.
이 작품은 직장에서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선정된 이들이 모여 일주일 동안 합숙해 누가 술래인지 찾아내는 리얼리티 쇼를 그린다.
등장인물 모두 직장을 오래 다녔다면 탕비실에서 한 번쯤 마주친 경험이 있을 법한 진상들이다.
공용 얼음 틀에 커피나 콜라를 얼리는 사람, 인기 커피믹스만 몽땅 챙기는 사람, 사용한 종이컵을 그대로 두는 사람, 탕비실에서 혼잣말로 떠드는 사람 등.
호감인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다.
작가의 전작과 비슷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읽는다면 꽤 당황스러울 소재와 설정이다.
등장인물 누구도 자기를 진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분명히 술술 읽히고 재미는 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에 찝찝함이 쌓인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물음에 다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진상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과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 사이의 괴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직장인 독자라면 읽으며 뜨끔할 만한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닐 테다.
내겐 이 작품이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느껴졌다.
전작처럼 장편이 아니라 중편 분량의 작품이니 말이다.
짧은 분량은 그만큼 작가가 본격적으로 후속작을 내기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는 의미로 읽혔다.
작가의 향후 행보가 어떨지는 새로운 장편이 나온 뒤에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작과 다른 결의 작품도 쓸 수 있는 작가라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가볍지만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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