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여자 후배와 술을 마시다가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친구인 여자 세 명이 모였을 때 생기는 미묘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셋이 자주 함께 모여도, 그중 둘이 따로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나머지 하나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많다더라.
셋이 만나는 자리인데도 둘이 같이 만나 함께 오고, 둘만 아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고, 식당에서도 둘이 나란히 앉아 나머지 하나와 마주 보고.
나머지 하나는 따를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내색하진 못하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먹서먹해져 멀어지는 일이 많다더라.
나는 주변 사람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고(소설가 자격이 없다), 관계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아서 가볍게 흘려들었는데, 그런 미묘한 관계가 여자들 사이에선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오래전에 여자 후배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구석이 많은 서른 언저리의 여성 셋이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이 1년 동안 이등변삼각형, 직각삼각형으로 변형되다가 마침내 정삼각형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사랑하고, 서운해하고,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동경하고...셋의 관계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 묘사가 집요할 정도로 섬세하다.
여자 후배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던 여성 독자라면 이 작품을 읽고 "맞아! 맞아!" "그래! 그래!"를 수시로 외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첫 소설집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유 역시 그런 여성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뜬금없긴 한데, 이 작품을 읽고 최근에 읽은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떠올렸다.
『동경』의 주인공이 마흔아홉 살까지 나이를 먹으면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속 세 주인공과 비슷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란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세심한 묘사가 길어서 자주 읽는 흐름이 끊겨 전에 무엇을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숲을 봐야 하는데 특정 나무의 껍질까지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중편 정도로 압축했다면 훨씬 나았을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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