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은 신간이 나오면 습관처럼 사서 읽는 작가이지만, SNS에 읽었다는 티를 내기가 부담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구름 위 높은 곳에 머무는 존재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서 말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마디 보태자면, 김훈은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산문집의 문장 역시 휘황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눈 호강을 하며 감탄했다.
더불어 깊은 한숨도 자주 터져 나왔다.
작가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를 집요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파고드는 문장을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보다 더 나이 먹은 이들이 보면 가소롭겠지만, 40대 중반에 들어서니 부쩍 몸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예전보다 적게 먹는데도(물론 내 기준이다) 달라붙는 군살은 더 많아졌고,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아 속은 늘 더부룩하다.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해져 안약을 상비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는 양이 줄어들었는데도 빨리 취한다.
관절과 근육이 자주 쑤시고, 길게 자도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홀로 앉아 생로병사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피붙이가 적지 않다 보니 더 그렇다.
그러던 중 이 산문집을 읽었기 때문인가.
책을 덮은 뒤 순식간에 30년은 늙어버린 듯 몸이 쑤셨다.
이런 쑤심이라면 견딜만하다.
작가가 조금 더 오래 글을 써줬으면 좋겠고, 나도 작가의 글을 더 오래 읽고 싶다.
p.s. 초쇄임을 고려해도 대놓고 눈에 띄는 오자가 있어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전작에선 이런 경우를 못 봤다. 나남출판사가 이렇게 허술한 출판사였나. 진즉 새로운 쇄를 찍었을 테니 수정됐겠지만 내가 붙잡은 흔적을 남긴다.
* 133페이지
신경준(1721~14781) → 신경준(1721~1781)
* 230페이지
정약용은 1979년 임금에게 → 정약용은 1797년 임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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