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식만 보면 최근에 읽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소설과 미술의 경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도 없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세 편은 분명히 허구이지만 마냥 허구라고 볼 수가 없다.
십수 년 뒤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원전 사고, 사고 이후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여기에 절묘하게 엮이는 예술 작품과 작가의 삶.
익숙한 서사 구조를 기대하고 읽으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현장 기록(물론 허구다)을 나열하는 형태로 전개되다가, 인터뷰(역시 허구다)가 튀어나오는데,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과 실존하는 예술 작품을 바탕으로 소설에서 펼쳐지는 근미래가 낯설지 않다.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보다는 특유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진 않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압도한다.
현대음악 같은 전위예술을 소설로 경험했다.
호불호가 대단히 갈릴 작품이다.
솔직히 내 입장은 불호에 가깝다.
나는 서사가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니까.
하지만 최근에 읽은 모든 한국 소설 중에서 이보다 확실하게 개성이 느껴지는 소설은 없었다.
주목해야 할 신인이 나왔다.
그래. 이런 소설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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