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작가가 쓴 『여우의 계절』은 올해 들어 읽은 모든 장편소설 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 진중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외계인과 딱히 지구를 지킬 마음은 없는데 지키게 된 소년의 어색한 브로맨스를 다룬다.
해양 오염, 펜데믹, 가족 문제 등 묵직한 소재가 브로맨스와 엮이니 묵직함은 줄어들고 유쾌함이 더해진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여우의 계절』을 과 『인더백』을 쓴 작가라고 상상하기 쉽지 않을 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외계인이다.
'새우탕 큰사발'에 환장하는 외계인이라니.
앉은 자리에서 '새우탕' 서너 개를 까는 외계인을 본 일이 있는가.
어처구니없긴 한데, 그걸 보는 나도 침을 질질 흘리다가 자정 넘어 '새우탕'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작년에 작가가 쓴 『엄마는 좀비』를 먼저 읽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잉?" 하면서 이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클래식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진 작가의 지식 플렉스는 덤이다.
게다가 돌고래 울음소리가 그렇게 무서운 소리였다니.
영화 「화성침공」이 떠올라 킥킥거렸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우직하게 자기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작가도 좋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가도 좋아한다.
일종의 '갭모에'를 느낀다고나 할까.
밤에 자기 전에는 읽지 말자.
감상하면 '짜파게티' 생각이 나 미쳐버리는 영화 「김씨 표류기」처럼, 이 작품을 읽으면 '새우탕' 포장을 뜯지 않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나는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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