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파크, 네이트판, 보배드림, 펨코, 더쿠, 클리앙, 일베 등...
나는 평소에 여러 온라인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게시물을 살핀다.
평소에 대놓고 밝힐 수 없는 속내와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어서 이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들어가서 확인하는 온라인 게시판 중에 디씨인사이드 문학 갤러리, 문예 갤러리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는 이용자가 주로 모이는 몇 안 되는 커뮤니티인데, 온갖 근거 없는 추측과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게시물이 난무해 흥미롭다.
이곳에서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는 흥미로운 유형의 게시물이 있다.
챗GPT로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등단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인데, 그 반응이 꽤 진지하다.
자신의 창작물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인공지능에 묻는 세상이라니.
심지어 챗GPT는 점수까지 매겨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게시물을 읽으며 AI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문학에도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체감했다.
변화가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먼저 온 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는 있었다.
작가는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이 바둑계에 어떤 충격과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깊게 들여다본다.
무려 전현직 기사 29명과 바둑전문가 6명을 인터뷰한 작가는 그들의 입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변화한 바둑계의 현재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나는 바둑을 잘 알진 못하지만, 『고스트 바둑왕』 『바둑삼국지』 등 바둑을 다룬 만화를 통해 바둑이 게임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서봉수 명인이 진로배 SBS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파죽의 9연승을 기록했던 이야기를 뒤늦게 접했을 땐 어마어마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둑계에서 벌어진 변화는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새롭게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둑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와 가치를 비롯해 모든 게 근본부터 흔들렸다.
누군가는 바둑계를 떠났고, 누군가는 마지못해 적응했고, 누군가는 환영하며 기회로 바라봤다.
작가는 바둑계에서 벌어졌던 일이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리라고 전망한다.
그것도 무척 서늘하게.
특히 후반부에 작가가 몰아붙이듯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들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정신이 멍해져서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뻑거릴 때가 많았다.
이 르포르타주는 내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듯 대답하기 어려운 온갖 질문이 맴돌았다.
꽤 충격이 오래갈 듯하다.
올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피와 기름』이었는데 바꿔야겠다.
『먼저 온 미래』는 올해 대한민국에 나올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평가받지 않을까 예언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모든 소설, 논픽션, 산문집 등을 통틀어 최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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