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느닷없이 그림자를 내어주면 고통스러운 기억과 슬픔을 지워주겠다는 '그림자 상인'이 등장한다.
그까짓 그림자를 내어주고 고통과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제안 아닌가.
이 작품 속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 거래를 받아들여 그림자를 잃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난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
소설은 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 달콤한 거래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파헤친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참된 기쁨조차 느끼지 못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슬픔을 지워낸 자리에 온전한 행복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한 축이 통째로 붕괴해 버린다는 사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뻔해 보이는 질문과 전개이긴 하지만 소설이 연출하는 환상처럼 오묘한 분위기가 뻔하다는 인상을 희석한다.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무겁지 않게 읽었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강명 장편소설 『서성이다』(현대문학) (0) | 2026.08.10 |
|---|---|
| 조영주 장편소설 『마지막 방화』(한겨레출판) (0) | 2026.08.10 |
| 이순임 장편소설 『럼과 라즈베리』(파람북) (0) | 2026.08.08 |
| 최현미 저 『읽는 여성의 역사』(어크로스) (0) | 2026.08.08 |
| 임지형 장편소설 『연희동 러너』(상상스퀘어) (0) | 202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