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사보다는 감각이 전면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평형모래 없이 태어나 세상의 미세한 파동과 저주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가족의 부재와 죽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겪는 주인공이 예민한 청각 때문에 세상 모든 사물을 다양한 주파수로 감지하며 겪는 심리 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작품이 정확히 어떤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전개했는지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억이 희미하다. 대신 작가는 감정의 리듬에 따라 문장 길이를 변주하고 다양한 소리를 동기로 활용한다.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자리에 감각적인 텍스트를 둔다. 융의 분석심리학이나 존재의 연결성을 뜻하는 철학적 상징들이 서사를 대신에 텍스트를 연결하는 끈이다.
소리와 냄새가 이미지로 남아 그림자처럼 떠도는데, 이 작품의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실험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특징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읽기보다는 온몸의 감각으로 직접 느끼는 경험에 가까웠다. 독특하면서도 아늑한 경험이었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영주 장편소설 『마지막 방화』(한겨레출판) (0) | 2026.08.10 |
|---|---|
| 김동하 장편소설 『그림자가 사라진 정오』(네오픽션) (0) | 2026.08.08 |
| 최현미 저 『읽는 여성의 역사』(어크로스) (0) | 2026.08.08 |
| 임지형 장편소설 『연희동 러너』(상상스퀘어) (0) | 2026.08.08 |
|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창비) (0) | 2026.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