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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박문구 장편소설 『너나』(예서)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6. 9. 23.



소설을 읽을 때는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있으면 일부러 함께 읽곤 한다.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마침 나란히 비교하며 읽기 좋은 작품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40대 여성인 윤고은 작가가 쓴 연애소설 『테니스나무』였고, 하나는 70대 남성인 박문구 작가가 쓴 연애소설인 이 작품이었다.
후자가 조금 더 흥미로워서 먼저 페이지를 펼쳤다.
그 연배에 신작을, 그것도 연애소설을 내는 작가는 천연기념물처럼 귀하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 심야극장의 한가운데 좌석에 뚝 떨어져 홀로 고풍스러운 멜로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인 목숨을 건 사랑(그것도 윤리적으로는 금지된 사랑)이 잃어버린 일종의 낭만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서로에게 매료돼 가파른 감정의 절벽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두 사람.
밀고 당기기나 현실적인 타협 따위는 하수에 불과하다는 듯, 요즘 독자들에게는 당황스러울만큼 직선적이면서도 거침없는 서사 전개.
일단 상대방을 죽여 놓고 시작하던 90년대 발라드보다도 더 비장하고 지독했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작품 제목이 '너 없이 나도 없다'는 처절한 선언으로 읽혔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미덕이 된 지금 시대에 이 작품 속 사랑은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그 무모했던 시절, 모든 것을 걸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감정의 원형을 그리워하지 않는가.
감정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닥까지 긁어모아 쏟아붓는 열정을 만나기 힘든 시대이기에, 작품의 투박함은 오히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작품의 체온만큼은 그 어떤 젊은 작가의 최신작보다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