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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소향 장편소설 『모방소녀』(텍스티)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6. 9. 11.

 

 

사건 전개가 대단히 빠르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반전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잘 만든 서스펜스 드라마를 보듯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펼쳐져,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중심 주제는 학벌지상주의다.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떠올리게 되지만,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학부모가 아닌 '학생'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시선의 재미를 안겨준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매력이 속도감과 재미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모방하는 자와 그 모방의 대상이 되는 자 사이의 심리를 대조하는 묘사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결핍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비틀어놓는지, 보여지는 삶에 집착하는 태도가 영혼을 어떻게 좀먹어 들어가는지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대단히 예리하다.

작중 인물 중 마냥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후반부에 들어서면 독자는 스스로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과 실제 우리 모습 사이에는 얼마나 큰 격차가 있을까? 타인의 시선을 열망하며 자신을 편집하는 삶은 과연 행복한가?
그리고 진정한 나란 과연 무엇인가?

주인공이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치밀하고 똑똑해 간혹 현실감이 떨어져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그러한 아쉬움은 희미해지고 잘 읽었다는 만족감이 더 크게 남았다.
올해 들어 새 작품을 쓰느라 많은 책을 읽지 못해 이런 평을 남기기가 조금 쑥스러운데, 순수하게 '재미' 하나만 따진다면 이 작품은 근래 읽은 장편소설 중 으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