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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LA메탈 전설 크라티아 23년 만에 새 앨범 “오래된 새로움으로 강력한 한 방 보여줄 것”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1. 20.

내가 이 형님들과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십 수 년 전 앨범으로만 들었던 크라티아. 지금도 이들의 곡 'All That I Want'는 내 MP3플레이어에 항상 들어있는 곡이다.

80년대를 마감하기 전 한국 록계의 명 발라드를 2곡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1989년 'Rock in Korea'앨범에서 김도균과 임재범 형님이 함께한 'Same Old Story'와 크라티아의 'All That I Want'를 꼽을 것이다.

발라드뿐만이 아니다. LA메탈밴드 답게 'Rock Box', 'Hard Headed Woman' 등 제대로 신나는 음악을 들려줬던 이들이다. 당시 녹음 환경이 열악해 기타 배킹이 모기소리 같이 들려 흠일 뿐이지 음악 하나만큼은 정말 좋은 밴드였다.

 

그랬던 분들이 23년 만에 새 앨범을 들고 록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뭐하다 이제야 나타났느냐고 물어보니 생업에 열중했단다. 이준일 형님은 모제과회사 정규직으로 13년을 일했고.. 역시 한국에서 록이란 배고플 수밖에 없는 음악인가..

 

홍보하시는 분이 내게 아무리 기자들에게 새 앨범 보도자료 보내도 관심이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연락한 기자이자 유일하게 새 앨범 단신이나마 실은 기자였다. 아이돌 쇼케이스 현장에 가보면 이름도 생소한 인터넷 매체들까지 포함해 가요담당 기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많아도 너무 많다), 이 형님들 새 앨범 소식 하나 단신으로 싣는 것이 그리도 어려울까? 대중음악 역사상 의미 있는 결과물을... 에효..

 

 

 

한국 LA메탈 전설 크라티아 23년 만에 새 앨범 “오래된 새로움으로 강력한 한 방 보여줄 것”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80년대 중반 한국 헤비메탈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밴드 시나위, 부활, 백두산이 최근 다양한 음악ㆍ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이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들보다 강렬한 사운드로 무장한 밴드들이 등장해 장르의 다변화를 시도했다. 1988년 컴필레이션 앨범 ‘프라이데이 애프터눈(Friday Afternoon)’은 이른바 ‘헤비메탈 2세대’의 시발점이었다. 블랙신드롬, 아발란쉬, 크라티아, 철장미 등 ‘헤비메탈 2세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이 대거 참여한 이 앨범은 당시 무려 53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이들의 음악은 방송으로 내보내기엔 너무 강했고,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못 이긴 대부분의 밴드들이 90년대 초중반 활동을 접었다. 누군가는 음악과 상관없는 직업을 택했고, 누군가는 가수들의 앨범과 공연 세션으로 활동하며 무대의 주변으로 물러났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중년의 아저씨가 된 ‘로큰롤 대디’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크라티아가 23년 만에 앨범 ‘레트로 펀치(Retro Punch)’를 발매하며 마중물 역할에 나섰다.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이준일에 김인철(베이스), 오일정(드럼)이 가세했다. 크라티아는 본 조비(Bon Jovi), 포이즌(Poison), 도켄(Dokken)으로 대표되는 팝적인 메탈인 LA메탈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1989년 ‘프라이데이 애프터눈(Friday Afternoon)’ 앨범에 함께 참여했던 아발란쉬와 조인트 앨범을 발매한 크라티아는 ‘올 댓 아이 원트(All That I Want)’, ‘하드 헤디드 워먼(Hard Headed Woman)’ 등 완성도 높은 곡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타리스트 이준일은 뛰어난 연주력으로 당시 ‘한국의 조지 린치(도켄의 기타리스트)’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크라티아는 보컬 최민수의 솔로 독립 및 잦은 멤버 교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해체되고 말았다.

 이준일은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단 한 번도 음악의 꿈을 놓은 적이 없다”며 “제로지, 하이톤 등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밴드들도 컴백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조지 린치’란 별명에 대해 “이제 조지 린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민망하다”고 손사래를 치며 “최근 배우 김윤석을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한국 메탈계의 김윤석’이라고 불러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앨범엔 타이틀곡 ‘리멤버(Remember)’를 비롯해 ‘하이어(Higher)’, ‘록 잇 투나잇(Rock It Tonight)’ 등 80년대 LA메탈 특유의 시원하고 직설적인 사운드를 담은 11곡(연주곡 포함)이 담겨있다. 크라티아는 과거의 향수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과거 열악한 녹음 환경 때문에 모기 소리 같았던 기타 배킹은 기름진 사운드로 탈바꿈했다. 세월의 힘으로 깊어진 연주력은 오래전 그것과는 다른 멋을 풍긴다. 앨범의 마스터링 작업은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머틀리 크루(Motley Crew), 래트(Ratt), 미스터 빅(Mr. Big) 등 세계적인 록밴드들이 거쳐 간 미국 LA의 DNA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세련된 질감의 사운드로 듣는 지글거리는 ‘쌍팔년도’ 메탈이 신선하고 정겹다. 앨범 타이틀 중 ‘복고’를 의미하는 ‘레트로’와 ‘주먹으로 치다’를 의미하는 ‘펀치’란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앨범의 사운드는 마치 1994년 45세의 나이로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노장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을 연상시킨다.


 

(왼쪽부터) 베이시스트이자 이번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김인철, 기타리스트 이준일, 드러머 오일정.


앨범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베이스 김인철은 “요즘 록은 너무 정제되고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줘 드라이한 느낌을 준다”며 “과거 아날로그 사운드의 느낌을 많이 살려 당시의 록은 이랬었다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엔 홍경민을 비롯해 H2O의 보컬 김준원, 이브(EVE)의 보컬 김세헌, 블랙신드롬의 보컬 박영철, 라디오 데이즈의 보컬 김용훈, 원(Won)의 보컬 손창현, 블랙홀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주상균, 크래쉬의 기타리스트 윤두병 등 한국 헤비메탈과 록계의 대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크라티아의 컴백을 도왔다.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80년대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세계적인 록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자선음반 ‘히얼 앤 에이드(Hear’N Aid)’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다. 이에 대해 이준일은 이러한 대규모 피처링은 예정에 없었는데 우리의 앨범 제작 소식을 듣고 참여를 자원한 윤두병과 함께 연주해보니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며 “이후 함께 음악을 했던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모두들 기꺼이 앨범에 참여해줬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채로운 보컬 피처링은 귀를 즐겁게 하지만, 정식 보컬이 없는 라인업은 앞으로의 활동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을 낳았다. 김인철은 “당분간은 원(Won)의 손창현과 함께 공연에 나설 예정”이라며 “현재 보컬 오디션을 준비 중이니 많은 실력파 보컬리스트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크라티아는 오는 3월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준일은 “크라티아가 활발히 활동을 펼쳤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록음악을 하기엔 어려운 환경인 것은 매한가지다. 선후배 뮤지션이 뭉쳐야 한다”며 “록음악을 했던 과거를 추억팔이하듯 미디어에서 소비하는 무늬만 록커가 아닌 ‘현재진행형’ 선배 록커가 되고자 한다“고 각오를 전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