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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눈물 한 방울 맺히게 만드는 내려놓음의 미학…장필순, 11년 만에 7집 발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8. 27.

올해 가요계는 정말 미친 것 같다.

선우정아 앨범을 들었을 때 올해의 앨범은 이 앨범이라고 확신했다.

그 생각은 조용필 19집을 듣고 깨졌다. 이후 이승열 4집이 또 그런 생각을 깼다.

특히 이승열 4집은 우리나라에 다시 나오지 않을 앨범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장필순 7집은 그 생각을 또 깨게 만들었다.

올해 들어 듣다가 눈물이 나게 만든 앨범은 이 앨범이 유일하다.

오버 같다고? 들어 보고 판단해보라.

 

나는 일종의 영적인 무언가까지 느꼈다.

 

 

눈물 한 방울 맺히게 만드는 내려놓음의 미학…장필순, 11년 만에 7집 발매

2초. 이 찰나 동안 광고 음악이 소비자의 만감을 자극하지 못하면 소비자의 다음 행동은 없다. 52초. 장필순이 정규 7집 ‘수니 세븐(Soony Seven)’의 첫 곡 ‘눈부신 세상’에서 첫 목소리를 들려주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다. 어지간한 가요의 1절이 흘러갈 만한 시간을 채우는 것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대곡 ‘에코스(Echoes)’를 연상케 하는 물방울 소리처럼 고요하고도 신비로운 울림뿐이다. 이 같은 울림이 낯설고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눈을 감고 여유를 부린다면, 이 앨범은 조용히 다가와 음악 자체의 순결함으로 청자를 섬세하게 어루만질 것이다. 27일 11년 만에 새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필순은 11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소속사(푸른곰팡이)에서 후배들이 하나둘씩 모여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음악(1990년대 조동진ㆍ조동익ㆍ장필순ㆍ이규호 등 포크 뮤지션들이 활동했던 기획사)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며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음악을 하는 일이 행복했고, 또 후배들에게도 힘이 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1년 만에 정규 7집 ‘수니 세븐(Soony Seven)’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장필순. [사진제공=푸른곰팡이]

 
포털 사이트에서 장필순을 검색하면 떠오르는 연관 검색어 중 하나가 제주도다. 지난 2002년 6집 ‘수니 6(Soony 6)’은 평단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맛봤다. 장필순은 허탈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2005년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는 제주 시내에서도 자동차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애월읍 소길리)에 터를 잡아 노는 밭에 배추와 파 등을 기르고 유기견을 키우며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장필순은 “제주도의 일상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느리고 풍성하다”며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하지만, 이러한 포기가 나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앨범엔 지난 20일 선공개된 ‘맴맴’을 비롯해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ㆍ‘그리고 그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ㆍ‘1동 303호’ㆍ‘휘어진 길’ 등 9곡이 수록돼 있다. 드럼을 제외한 앨범의 녹음은 모두 장필순의 제주도 집에서 진행됐다. 하나음악 시절 동료들이 하나둘씩 섬으로 모여들어 다시금 소박한 음악 공동체를 형성했다. 오랜 음악적 동반자이자 제주도 주민인 조동익이 앨범 제작을 지휘했다. 한국 포크 음악의 거목이자 하나음악의 수장이었던 조동진은 ‘눈부신 세상’을 장필순에게 선물했다. 여기에 후배 싱어송라이터 고찬용과 이규호가 장필순의 제주도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난 항상 혼자 있어요’ㆍ‘빛바랜 시간 거슬러’ 등을 완성했다.

장필순은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곡에 욕심을 내기보다 다른 이들의 좋은 곡을 앨범에 많이 담아내고 싶었다”며 “내 곡을 덜어낸 자리에 후배들의 좋은 곡을 채워 넣었고, 이들과 곡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많은 힘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이자 음악적 특징은 내려놓음이다.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세련됐지만 화려하진 않다. 내려놓은 자리로 기교를 뺀 장필순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낮게 스며들어 나머지 소리들을 조율한다. 90년대 하나음악 특유의 서정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등 트렌디한 요소들이 한 공간에서 유영하되 반목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내려놓음 덕분이다.

장필순은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기교가 줄어들었고 빈 공간과 울림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주변으로부터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새삼 내가 열심히 작업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장필순은 오는 10월 18ㆍ19일 제주시 청소년야영장에서 열리는 ‘제1회 제트 페스트’ 무대에 오른 뒤, 11월 9일 뭍으로 건너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진다. 그는 “‘대세’ 뮤지션은 아니지만 아직도 내 음악을 기다리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앨범과는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꾸미기 위해 여유를 갖고 공연을 준비 중이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