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오후 12시 55분에 EBS TV '문학사랑e'에서 방송된 장이지 시인의 '어깨 너머의 삶'이란 시입니다.
시낭송 배경음악으로 제가 작곡한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곡이 같이 방송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소개된 시를 감상하면서 정말 가슴이 싸했습니다. 제 아버지의 모습이 겹치면서요.
어깨 너머의 삶
장이지
낭송: 장이지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 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의 내민 손 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를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장이지 197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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