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6월 19일 -
오전 10시 30분에 일어났다. 잠을 많이 자두어야 걷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어제 밤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니 3시 넘어 잠들었으니 부족한 잠을 채워야 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준비물은 다 준비되었는데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얼굴가리개와 뒷목 가리개를 준비 못했다. 원래 어제 도착했어야 하는 물건인데 도착하지 않았다. 택배회사에 전화해보니 오늘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도착한단다. 결국 포기했다. 대신 얼마전 이니스프리에서 구입한 썬크림은 얼굴과 목에 잔뜩 발랐다. 그리고 11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부근 상왕십리 역 근처에서 셀카
아침을 못 먹은터라 점심을 겸해서 브런치(?)로 왕십리역 근처 맥도널드에서 빅맥 런치세트를 먹었다.
평소에 패스트 푸드는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오랜만에 먹으니 꽤 맛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순간 아래에 깔린 제품 영양 분석표가 보였다.
저걸 다먹으면 칼로리는 하루 권장량의 반, 지방과 나트륨은 70%에 육박했다.
가끔 먹는 것은 몰라도 자주 먹으면 분명히 탈이날 녀석이다.
식사를 마친 뒤 신설동역으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숙소가 있는 상왕십리역에서 1번국도로 이동을 한 뒤 여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1번 국도가 붙어있는 석수역에 내려서 여행을 할 것인가...
후자를 택했다. 굳이 서울 도심에서 더 매연을 맡고 싶지도 괜히 길을 헤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보로 신설동역으로 이동했다.
근처 주택가에 능소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여름이면 늘 찾아오는 꽃이다.
나는 이 꽃을 보면 나이가 든 푸근한 여인이 떠오른다
청계천 무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 입구에 피어있던 베고니아
문득 용필좌의 노래 '서울 서울 서울'의 가사가 떠올랐다.
'베고니아 바구니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이 서두네
나의 사랑을 가져가버린 그대'
약 15분정도 걸어서 신설동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1호선을 타면 바로 석수역으로 간다.
열차의 자리는 많이 비어있어서 앉아서 갔다.
앉아서 아함경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이란 늘 새롭다. 내용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면 모르는게 늘 나온다.
오늘도 열차 안에서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오후 1시 30분, 석수역에 도착했다.
사실 서울에서 대전까지 도보 여행이라는 주제가 무색하다.
석수역은 서울과 안양의 경계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서울의 청계천을 3번이나 왕복했으니 그냥 패스~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훈련소에서도 나는 초코파이를 한 개도 먹지 않고 모두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덕분에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생전 사본 적이 없는 초코바를 샀다.
이제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출발하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절대 일부러 뽀샤시를 넣은게 아니다.
찍고 보니 이렇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뽀샤시 넣는다고 달라질 얼굴도 아니다.
홀로 걷는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해줄 MP3
이 안에 수십개의 앨범을 집어넣었다.
그중에서 용필좌의 1991년 앨범 13집 'The Dreams'를 선택했다.
도시의 낭만과 고독이 절절하게 담긴 멋진 앨범이다.
첫 번째 트랙 '꿈'이 흐른다.
여기서 부터 출발이다.
길가에 좀씀바귀꽃이 피어있었다.
여름이면 지천에 널리는 꽃이다.
바로 옆에는 메꽃도 피어있었다.
간혹 나팔꽃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팔꽃과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나팔꽃은 보라색이지만 메꽃은 저런 색깔이고 꽃의 크기도 작다.
역시 도시라서 그런가 인도가 잘 되어있다.
처음에는 인도란게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이후 어두컴컴한 밤 수원을 벗어나 화성을 걸어갈 때까지는...
길을 걷다 만난 실유카 꽃
자주개자리꽃도 보이고~
여름이면 찾아오는 접시꽃도 만나고...
잘 익은 버찌도 만났다.
따서 먹어보니 달콤 쌉싸름하다.
몇 년전 버찌를 따서 술을 담갔다가 실패한 기억이 떠오른다.
인도가 없다!!
갓길로 걸었다.
차가 오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데 깜빡했다.
뒤에서 쌩썡 달려오는 차들 때문에 식겁했다.
안양천의 모습.
물은 역시 더럽다. --;
나는 안양이 작은 곳이라 금방 수원이 나올 줄 알았다. 오후 3시 46분 표지판이 나타났다. 수원 14km, 의왕 3km 2시간 내내 걸었지만 안양을 벗어나기는 커녕 수원은 아직 멀다.
정태춘 님의 1집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시인의 마을', '촛불'... 모두 좋다~
오후 4시. 의왕시에 도착했다.
길가에 피어있던 털별꽃아재비 꽃
덥고 땀도 많이 흘려서 얼굴이 시뻘겋다.
김수희 누님의 베스트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서울여자', '멍에', '당신은 누구세요', '너무합니다'등등 주옥같은 곡이 흐른다.. 다른 건 몰라도 술을 마실 때 듣기 가장 좋은 곡은 역시 김수희 누님의 노래다.
비비추 꽃도 피어있었다.
한세대학교가 이 근처에 있다. 순복음교회가 재단이던 학교인가... 아마 내 기억에는 그랬던 것 같다.
유채꽃이 아직도 피어있었다.
나는 별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잘 마시지도 않는다. 그런데 길을 걷다보니 냉커피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것도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이 들은 1000원짜리 냉커피가 말이다. 한번 떠오르니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원래 계획은 안양을 빨리 벗어나 수원시내 편의점에서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양...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ㅜㅜ 그래서 편의점이 나오면 바로 한잔 마셔야 겠다 생각을 했다. 결국 한참을 걷다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잠겨있었다. ㅜㅜ
길거리 거리마다 대한민국 대표 잡초 개망초 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무성하게 피어난 망초대를 보니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의 싯구가 떠올랐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걸어도 걸어도 수원은 멀고 안양은 끝나지 않는다. 편의점도 보이지 않는다.
수원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표지판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수원이 나오려나 보다.
길가에는 애기똥풀도 보이고
개망초와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잡초인 환삼덩굴도 지천에 피어있다. 나는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지구상에 핵전쟁이 일어나도 반드시 살아남을 식물은 환삼덩굴이고 동물은 '쥐' 일 것이다.
이제 저런 표지판에 속지 않으리... 이왕이면 거리가 얼마가 남았다고 써놓아야 기대를 안 가지지 ㅜㅜ
제한속도 80km미터.. 제발 80km로 달려보고 싶다 ㅜㅜ
울타리로 자주 쓰이는 쥐똥나무에도 꽃이 폈다.
오후 5시 2분 의왕을 벗어나 드디어 수원에 도착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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