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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음악 및 뮤지션 기사

[취재X파일] 2014년 상반기 추천 앨범 “이거 한 번 들어볼래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7. 11.

6월 말께 정리해서 기사를 하나 쓰려고 했는데 좀 늦어졌다.

괜찮은 음악이 더 나올까 의문이 드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좋은 음악을 담은 앨범들이 속출한다.

대한민국... 참 신기한 나라다.


기사와 상관없이 내게 있어 올 상반기 최고의 앨범은 뭘까? 

안 가르쳐 주지~

하지만 기사를 주의 깊게 보면 짐작은 할 수 있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순위 매기기는 언제나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누구나 자신 만의 취향과 의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남들과 비교해 확인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다만 객관적인 지표에 기반을 둔 평가가 아닌 이상 순위 매기기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할 수 없는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라면 더욱 그러하죠. 

아래에 소개되는 앨범은 순위가 아닙니다. 대중음악을 취재해 온 기자의 입장에서 대중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앨범을 그저 ‘추천’하는 것뿐이죠. 이는 추천 앨범에 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비겁한 변명이기도 합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소개 순서는 발매일자 순으로 배치했습니다. 



▶ 정준일 정규 2집 ‘보고싶었어요’(1월 16일 발매)= 김동률, 유희열 등을 잇는 웰메이드팝이라는 수식어가 굳이 필요할까요. 최근 들어 이 정도로 많은 정성이 들어가고 우아한 편곡과 멜로디를 들려준 앨범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요즘에는 컴퓨터 덕분에 음악을 만들기 참 편해졌지요. 한때 미디와 디지털 녹음이 자랑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유행이 돌고 돌아 과거의 유산이었던 LP가 주목을 받고 아날로그 릴테이프 녹음이 자랑인 세상이 왔습니다. 이는 그만큼 대중이 기본에 충실한 ‘진짜’ 음악에 목마르다는 증거이겠죠. 이 앨범은 잘 만든 음악을 좋은 연주로 제대로 녹음해 만든 작품입니다. 제작비에 대한 부담 따위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이 ‘고품질’의 ‘정규 앨범’을 듣다보면 하루에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적당히’ 만든 ‘디지털 싱글’들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014년 새해 벽두를 즐겁게 만들었던 멋진 앨범입니다.

▶ 정민아 정규 4집 ‘사람의 순간’(1월 29일 발매)= ‘캐논의 변주곡’이 가야금으로 연주된다고 해서 국악이 될 수 없듯이,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의 음악을 국악이라는 좁은 범주로 바라보는 것은 의미 없어 보입니다. 정민아의 음악은 대중음악 신에서 보기 드문 악기인 가야금을 전면에 내세울 뿐이지, 실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포크이니까요.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퓨전국악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로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친화적입니다. 가야금 연주 역시 곡에 따라 우쿨렐레, 베이스를 닮은 듯한 다양한 소리를 연출하며 곡에 이물감 없이 녹아들고요.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정민아의 깊은 음악적 시선입니다. 특히 “울지 말아요 늙고 병든 이여/그대 여기 오기까지/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으니”라는 ‘울지 말아요’의 가사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의 숭고함을 드러내는 담담한 절창이죠. 여기에 세상의 하대를 견뎌내는 매춘부의 삶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부정한 여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고 작게’까지……. 어디서 이런 곡들을 듣겠습니까.

▶ 해리빅버튼 미니앨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4월 2일 발매)=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최근까지 하드록과 헤비메탈은 시대착오적인 장르로 여겨져 멸종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공룡 메탈리카를 비롯해 시나위, 블랙신드롬 등 80년대 중후반 한국 헤비메탈을 이끌던 주역들이 90년대로 들어와 대거 얼터너티브 록으로 전향했던 것도 결국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었죠. 그러나 유행은 역시 돌고 돕니다. 이제 세련되고 잘 빠진 모던록 사운드에 식상함을 느끼고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신선함을 느끼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땀 냄새 풀풀 나는 하드록과 헤비메탈만큼 관객을 흥분시키는 음악도 드물죠. 해리빅버튼은 이 같은 변화의 물줄기의 선봉에 서서 흐름을 주도해 온 밴드입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4인조에서 3인조로 재편됐지만 사운드는 오히려 단단해졌습니다. 기타가 2대에서 1대로 줄어든 탓에 연주의 다이내믹한 맛은 전작보다 덜하지만 사운드는 더욱 직선적으로 바뀌었죠. 특히 해리빅버튼은 ‘쌍팔년도’ 8비트를 고집하는 밴드가 아닙니다. 제대로 살아있는 그루브가 어지간한 댄스 음악 뺨칠 정도로 흥을 불러일으키죠. 


▶ 원 정규 4집 ‘로커스 매뉴얼(Rocker’s Manual)’(4월 3일 발매)= 첫 곡의 작렬하는 기타 리프부터 반가운 앨범입니다. 요즘 세상에 헤비메탈 그것도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를 만나긴 쉽지 않기 때문이죠. 밴드 원(WON)은 1998년 결성 이후 16년 동안 단 한순간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정통 헤비메탈을 지켜온 몇 안 되는 장인(匠人)입니다. 이 장인은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라는 뼈대를 유지하되 결코 과거를 답습하지 않습니다. 각 악절의 고리마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편곡ㆍ가사ㆍ멜로디의 타이밍이 그 증거죠. 또한 사운드 면에서도 결코 과거의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에서 세련된 톤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앨범은 과거의 헤비메탈이 어떻게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답안입니다. ‘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의미를 가진 ‘로커스 매뉴얼’이란 앨범의 타이틀부터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 메스그램 미니앨범 ‘디스 이즈 어 메스, 벗 잇츠 어스(This Is A Mess, But It’s Us)’(4월 8일 발매)= 앨범의 첫 곡이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탄성을 자아냅니다. 강렬한 메탈 연주 곳곳을 파고드는 트렌디한 신스 사운드, 거친 스크리밍과 팝을 방불케 하는 유려한 멜로디를 소화하는 여성 보컬의 감성적인 조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탁월한 질감으로 버무려낸 녹음 수준까지 이 앨범은 한국의 록계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메스그램의 더 나은 사운드를 위한 집착은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까지 직접 날아간 이들은 세계적인 스튜디오 ‘아트리움 오디오(Atrium Audio)’에서 일주일간 믹싱 과정을 마치고 마스터링본을 받아 엔지니어들과 두 달간 수십 회에 걸쳐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습작을 무려 55곡이나 버리고 5곡만 앨범에 담는 초강수를 뒀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느 북유럽 정상급 밴드 이상의 사운드를 만들어 낸 이들이 신인이라는 점입니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밴드입니다. 

▶ 박준면 정규 1집 ‘아무도 없는 방’(5월 15일 발매)= 배우들의 가수 외도는 외부의 삐딱한 시선을 동반합니다. 이 같은 시선은 외도가 말 그대로 외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적당히 부르고 적당히 화제를 모은 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뮤지컬 배우 출신 싱어송라이터 박준면의 첫 정규 앨범 ‘아무도 없는 방’은 외도를 향한 삐딱한 시선에 진정성이라는 정공법으로 경종을 울립니다. 늘 무대 위에서 노래와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이지만 자신의 곡을 모두 직접 만들고 편곡에 앨범 디자인까지 직접 챙기는 것은 외도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니 말이죠.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은 낯선 조연 배우들 중 하나였던 그는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의 연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제대로 품격을 갖춘, 좀처럼 보기 드문 성인 음악이 탄생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우리 대중음악계는 흔한 배우 출신 가수가 아닌 좋은 음악을 만드는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하나를 얻게 됐습니다.


▶ 솔루션스 정규 2집 ‘무브먼츠(Movements)’(5월 16일 발매)= 지난 2012년에 발매된 듀오 솔루션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국내에는 없는 사운드였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고, 아이돌 댄스 음악 이상의 흥겹고 유려한 멜로디와 리듬을 가졌지만 중심에는 단단한 록 사운드를 품고 있었죠. 이들의 음악은 ‘세련미’라는 단어 외에 적당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빠진 모양새로 마니아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솔루션스가 2년 만에 발표한 정규 2집 역시 전작 이상으로 세련된 사운드로 몸을 들썩이게 만들며 이들의 지난 음악적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보이고 있습니다. 밴드 사운드를 중심에 두고 다소 소심하게 전자음을 사용했던 전작과는 달리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편곡도 매력적입니다. 그 결과 전작보다 더욱 라이브가 기대되고 댄서블한 앨범이 탄생했죠. 솔루션스는 ‘해결책’이라는 대담한 의미를 가진 밴드명이 부끄럽지 않은 음악적 대안으로 기꺼이 청자가 춤을 출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 바버렛츠 정규 1집 ‘바버렛츠 소곡집 #1’(5월 27일 발매)=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같은 50~60년대 스탠더드와 옛 가요부터 TLC 같은 90년대 팝까지 목소리만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세 ‘가시내들’의 실력은 앨범을 내기 전부터 화젯거리였습니다. 앨범 역시 이들의 라이브만큼 매력적입니다. 주 멜로디를 부르는 보컬을 중심으로 새침하게 치고 빠지는 화음이 매력적인 ‘가시내들’을 비롯해 스윙감이 넘치는 흥겨운 로큰롤 ‘쿠커리츄’,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층층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화음의 조화가 압권인 ‘한여름 밤에 부는 바람’, 우리의 전통 노동요와 흑인 블루스의 정서가 이물감 없이 화학적으로 어우러지는 ‘비가 오거든’까지… 바버렛츠는 과거를 박제시키지 않고 현재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그야말로 ‘끝내주는’ 음악을 스스로의 역량으로 앨범에 담아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사운드의 질감입니다. 바버렛츠는 디지털로 녹음한 음원을 아날로그 릴테이프에 담아 다시 하나하나 재생해 새롭게 곡을 녹음했고, 그 결과 50~60년대 팝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깊은 질감의 사운드가 연출됐습니다. 

▶ 이정아 정규 1집 ‘언더토우(Undertow)’(6월 5일 발매)= 엠넷 ‘슈퍼스타K3’ 톱(TOP)11 출신인 싱어송라이터 이정아는 기존 오디션 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버스커버스커, 울랄라세션, 투개월 등이 가요계를 휘저을 때에도 이정아는 앨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죠. 대중이 이정아에 대해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정아는 오디션 출연 전 이미 CJ문화재단의 신인 지원 프로그램 ‘튠업’ 4기에 선발되며 음악적 역량을 입증한 ‘뮤지션’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정아가 조용히 세상에 내놓은 이 앨범에는 오디션 스타들을 향한 회의와 편견을 거두고 음악적으로 논의할 만한 결과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적 뿌리는 포크이지만 월드뮤직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멜로디 라인과 다양한 악기의 조합,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거대한 스케일의 편곡이 더해져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10대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실험을 펼쳐 온 베이시스트 정재일이 앨범의 프로듀서와 편곡을 맡아 이정아의 음악에 날개를 달아줬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정아의 맑고 힘 있는 목소리입니다. 음악과 연주에 지지 않는 이정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이 앨범은 결코 만들어 질 수 없었을 겁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앨범은 지금까지 오디션 스타들이 내놓은 모든 결과물 중 가장 높은 음악적 성취를 거둔 작품입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