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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커 “나는 근본주의 뮤지션…똑같은 음악 만들기 의미 없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7. 28.

가끔 이 바닥에서 뮤지션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정말 뮤지션이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뮤지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효석이형은 유치한 표현이지만 진정한 뮤지션이다.


효석이형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순 있다. 

하지만 음악을 바라보는 자세에 있어서 효석이형보다 진지한 뮤지션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대놓고 효석이형을 빨아주는 이유다. 이 사람은 진짜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근본주의라는 단어는 대체로 보수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어감을 준다. 이 같은 어감은 근본주의가 주로 종교 갈등과 함께 언급되는 것에 기인하지만, 근본주의의 사회학적인 의미는 ‘본질적인 것의 절대적 진리를 강조하는 종교운동’이다. 즉 근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무리하지만 뮤지션에게 적용한다면, 뮤지션의 근본주의는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레퍼런스(Referenceㆍ참고)’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근본주의자가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 지는 의문이다.

싱어송라이터 조커(Joker)는 시작부터 철저히 근본주의의 자세를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지난해 발매된 조커의 데뷔 앨범 ‘컬라이더스코프(Kaleidoscope)’는 한국 대중음악의 그 어떤 계보에도 속해 있지 않은 문제작이었다. 팝처럼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다가 갑자기 재즈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리듬과 연주가 끼어들고, 예상을 교묘하게 비껴나가는 화성과 멜로디는 곡의 기승전결조차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조커를 보아온 에피톤 프로젝트,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 동료 뮤지션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지만 대중은 쉽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감히 말하건대 조커의 음악이 현재 대중음악의 눈높이보다 몇 발짝 앞선 곳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조커가 1년 만에 정규 2집 ‘별의 노래’로 돌아왔다. 전작을 미뤄 짐작하고 새 앨범을 듣는다면 꽤 당혹스러울 것이다. 전체적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어쿠스틱 편곡이 주를 이루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으니 말이다. 조커는 자신의 데뷔앨범으로 이룬 성취에도 기대지 않는 음악을 새 앨범에 담아냈다. 자기 파괴를 서슴지 않는 조커의 음악을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는 현재로선 독창성 외에는 없어 보인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상수동의 한 주점에서 만난 조커는 “‘별의 노래’라는 앨범 타이틀에는 수록곡 전곡이 모두 ‘별’처럼 가치가 있는 곡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조커는 “이번 앨범의 어쿠스틱 사운드는 음악적으로 다소 어려웠던 지난 앨범보다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타협이긴 하지만 결코 쉽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뻔한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 결과 전작과는 많이 다른 모습의 앨범이 탄생했다”고 전했다.

조커는 올 초부터 시작한 ‘조커스 페이지(JOKER’s page)’ 프로젝트를 통해 변신을 예고했다. ‘조커스 페이지’는 격월간 신곡 3곡을 발표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조커는 지난 2월 ‘초 봄 무렵’과 4월 ‘사필귀정’을 통해 어쿠스틱 사운드를 강조하면서도 독특한 구성을 가진 음악을 선보였다. 조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창성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자존심을 살리면서도 실리를 챙기고자 한 영리한 타협인 셈이다.

조커는 “이번 앨범에 담긴 곡은 지난해 데뷔 앨범 발매 후 모두 새롭게 만든 곡”이라며 “과거의 히트 공식을 답습하는 일은 뮤지션 자격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직접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라면 자기복제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강볼프씨’ ‘라라라라’ ‘별의 노래’ ‘올리사랑’ ‘늑대의 시’ 등 신곡 5곡을 비롯해 ‘사필귀정’ ‘침묵의 힘’ ‘우리의 삶’ ‘초 봄 무렵’ ‘사랑, 사랑’ ‘당신과 나’ 등 ‘조커스 페이지’로 선공개된 6곡을 포함해 총 11곡이 수록돼 있다.

타이틀곡 ‘강볼프씨’는 하림의 아코디언 연주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을 교차시킨 재치 있는 편곡과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연주와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과거와 현재의 익숙한 요소들로부터 개성을 이끌어내는 ‘강볼프씨’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미남 나에게 겸손함을 기대하지 마시오” 같은 힙합의 스웨그(Swag) 저리가라할 수준의 가사와 어우러져 신선한 매력을 보여준다.

조커 특유의 모호한 기승전결과 익살을 잘 보여주며 앨범의 성격을 정의하는 ‘라라라라’, 일상의 권태를 건전가요를 연상케 하는 유머로 표현한 가사와 박주원의 맛깔 나는 기타 연주의 조화가 인상적인 ‘사필귀정’, 시적인 가사를 감싸는 아코디언 연주가 따스한 탱고풍의 ‘별의 노래’, 신의 가없는 사랑을 품격 있는 가사와 멜로디로 들려주는 ‘올리사랑’은 흔하디흔해진 어쿠스틱 사운드도 품격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곡들이다. 자신과 맺어진 다양한 관계들의 소중함을 노래한 ‘당신과 나’, 에피톤 프로젝트가 쓴 쓸쓸한 가사와 유려한 멜로디가 합쳐져 서정을 극대화하는 ‘초 봄 무렵’ 같은 곡은 조커가 실험에만 매몰되지 않고 대중과 눈높이를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품 같은 곡들이다.

조커는 “데뷔 앨범 발표 후 장르의 통일성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평가도 들었지만 나는 그 어떤 정해진 틀에 내 음악을 우겨 넣으려는 시선을 거부한다”며 “내 음악은 조커라는 이름으로 명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르의 통일성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커는 앨범의 문을 닫는 ‘늑대의 시’를 통해 의미심장한 가사로 뮤지션으로서 삶과 운명을 조명한다. “반복되는 의문과 반문이 나를 잠식치 않는다. 그 정도로 난 단단해져 있다. 오 형제여 너 걱정 말아라” 같은 가사에선 음악과 마주한 조커의 자기 확신이, “강해진 후 언젠가 내게도. 좋은 날이 올까 내게도. 설마 그리 고대하던 좋은 날이 평생에 오지 않을 수도 있을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네 허나 올 수도 있다네 오면 좋겠지” 같은 가사에선 벗어날 수 없는 뮤지션으로서의 운명에 대한 체념이 동시에 엿보인다.

조커는 “건강한 생각을 가진 뮤지션들이라면 누구나 남들과 비슷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지 않은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독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며 “1집에 이어 2집을 만들면서 나는 내 길에 대한 확신을 느꼈다. 내 지상 목표는 참신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전했다.

조커는 이르면 올해 안에 새로운 정규 앨범을 하나 더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진행해 온 ‘조커스 페이지’ 프로젝트도 조만간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조커는 “세션 연주자로 오래 활동해 온 터라 데뷔 앨범 발매가 늦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만회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며 “늘 내 음악에 대한 갈증이 컸었던 만큼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만들 생각이다. 다음 앨범 역시 대중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음악을 담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