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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추천 앨범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9. 파격적인 소재도 가인이 다루면 예술이 된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3. 18.

가인의 새 앨범 '하와'는 그 자체로 충실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짜 '앨범'이다.

앨범의 가치는 저마다의 곡들이 모여 하나의 또 다른 실체를 이뤄내는, 즉 '따로 또 같이'에 있다고 본다

가인의 새 앨범은 최근 들어 그런 앨범의 성격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었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소재 무척 또한 매력적이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가인 미니앨범 ‘하와(Hawwah)’= 가인의 솔로 활동은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와 비교해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아왔죠. 아이돌 음악에선 다소 낯선 탱고를 선보였던 ‘돌이킬 수 없는’부터 절제된 관능미를 보여줬던 ‘피어나’,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웠던 ‘Fxxk U’까지……. 아슬아슬하게 금기를 넘어서는 가인의 관능미는 같은 콘셉트를 내세우는 다른 걸그룹들과 비교해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극이 강해지면 역치도 높아지는 법이죠. 대중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아는 가인의 고민은 깊었을 터입니다. 고심 끝에 가인이 들고 온 주제는 성경 속의 인물로 인류 최초의 여성이자 원죄의 주인공인 ‘하와’입니다. 

타이틀곡 ‘패러다이스 로스트(ParadiseLost)’와 ‘애플(Apple)’을 비롯해 ‘프리 윌(Free Will)’ ‘더 퍼스트 템테이션(The First Temptation)’ ‘두 여자’ ‘길티(Guilty)’ 등 수록곡 모두 매력적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역시 ‘패러다이스 로스트’입니다. 이 곡은 성경 속 하와와 그를 유혹하는 뱀을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죠. 갑작스럽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뱀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가인의 안무와 뱀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전신 타이즈 의상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감각적인 미학을 더합니다. ‘애플힙’을 강조하는 몸에 달라붙는 붉은 의상이 인상적인 ‘애플’의 뮤직비디오 또한 ‘패러다이스 로스트’와는 정반대의 톤으로 보는 즐거움을 줍니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앨범의 작사 작업을 총괄하는 리릭 프로듀서(Lyric Producer)를 따로 둔 것입니다. 가인의 첫 솔로 앨범부터 작사가로 참여해 온 김이나 작사가가 리릭 프로듀서로 참여했죠. 김 작사가는 ‘하와’의 선악과를 취하기 전 순수한 모습과 뱀의 유혹을 받아 갈등하는 모습, 취한 뒤 거듭나는 모습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이 같은 작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예이죠. 그 결과 이번 앨범은 가요계에선 보기 드문 콘셉트 앨범(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와 이야기를 스토리를 설정해 통일감을 주는 앨범)의 형태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번 앨범을 반드시 개개의 음원이 아닌 앨범으로 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아직 섣부른 평가일까요? 이제 가인은 아이돌의 차원에서 제단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듯합니다.


▶ 루카스(
LuKas) 정규 1집 ‘루카스 다이어리(LuKas’s Diary)’=
좋은 배경음악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우선 청자보다 전면에 나서서 주의력을 흩트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우울하거나 들뜬 음악도 곤란할 것 같군요. 쉬우면 유치하고 복잡하면 신경을 긁겠죠. 배경음악의 조건을 기자 나름대로 꼽아보니 은근히 까다롭습니다. 이 앨범에 실린 음악은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앞으로 봄의 배경음악으로 꽤나 많은 신청을 받게 될 것 같군요.

루카스는 지난 2013년 ‘섬데이 인 오텀(Someday In Autumn)’ ‘인성 이즈 루카스(Insung Is Lukas)’ 등 2장의 싱글을 발매하며 솔로로 데뷔한 색소폰 연주자로 현재 가수 박상민 밴드의 마스터입니다. 연주자들이 ‘반주자’로 홀대 받는 한국 음악 시장의 특성상, 연주 앨범을 접하는 일은 쉽지 않죠. 또한 한국에서 발매되는 연주 앨범의 대부분은 재즈 장르에 국한돼 있습니다. 이 앨범은 재즈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빅밴드,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요소를 팝적인 감각으로 엮고 있습니다. 듣기에는 편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죠. 

이 같은 편안함은 처음 들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유려한 멜로디로부터 나옵니다. 타이틀곡 ‘2월에 피는 꽃’의 따뜻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는 이 같은 앨범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최근 들어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던 박상민이 보컬로 참여한 또 다른 타이틀곡 ‘시간이 흘러’도 반가운 곡이군요. 연주곡만을 고집하는 대신 보컬을 담은 곡을 4곡이나 실어 연주 앨범의 약점인 지루함을 쉽게 감지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시장의 현실을 이해한 영리한 타협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의 백미는 마지막 트랙에 실린 ‘아리랑’입니다. 이미 수많은 연주자들이 자신 만의 색깔로 들려줘서 특별할 것 없는 곡 같지만, ‘아리랑’의 선율에는 한국인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무언가가 연주자들이 꼭 한 번쯤은 ‘아리랑’에 손을 대는 이유겠지요. 루카스는 ‘아리랑’의 서정적인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대금, 해금, 가야금, 브라스의 협연을 더해 웅장한 맛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루카스는 오는 4월 2일 서울 신사동 엠 콘서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벌인다는 군요.



※ 살짝 추천 앨범

▶ 인디 20(인디 20주년 기념 앨범 Part 1)= 성년을 맞는 인디 신의 역사를 정리하는 야심찬 프로젝트. 섬세한 가사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요조의 ‘불륜’ 강력 추천.

▶ 파울로시티(Faulocity) 미니앨범 ‘퍼지 네이션(Fuzzy Nation)’= 예나 지금이나 록 인스트루멘탈 앨범은 귀하다. 쉽게 거둬지지 않는 잔향이 형성하는 몽환적인 질감이 인상적.

▶ 봄여름가을겨울 와인콘서트 10주년 실황앨범 ‘SSaW Long’=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 같은 노래도 장소를 바꿔 여유롭게 연주하면 사운드가 이렇게 변하는구나…….

▶ 블랙러시안 미니앨범 ‘이별의 단계’= 사랑의 씁쓸한 감정을 감싸는 따뜻한 공간감. 수상한커튼의 음악에 록의 요소를 강화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