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기념물(제290호)로 보호받고 있는 왕소나무는 꿈틀거리는 줄기가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을 닮아 용송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황토를 발라놓은 듯 벌건 왕소나무 주위에 16그루의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마치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형상을 닮아보이기도 한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 왜 '마을숲'인가?

우뚝 선 동구나무 한 그루는 그 동네의 복이었다. 한여름 저녁 햇살이 먼 산봉우리에 닿으면 낮 동안 산허리에서 몸을 식힌 바람이 나무 그늘 아래로 찾아드는데, 사람들은 바람의 목적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경유지만큼은 잘 알았다. 나무는 대개 고단한 하루가 엎드리는 곳에 서있었는데, 열대야로 잠 설치는 밤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아래로 모여들곤 했다. 그 아래서 시원한 막걸리에 기대어 서로의 수많은 말들을 헤아리다 잠들던 밤은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그리 멀지않은 과거에 보편적이었던 풍경과 서정은 이제 도시화·농촌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변두리로 밀려나 근근이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숲이란 그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 이뤄지는 것들이라 여겨온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마을숲'이란 익숙하지만 생소한 존재다. 우선 '마을숲'은 일상으로부터 유리된 일반적인 숲과는 달리 마을과 가까운 곳, 사람들의 손끝에서 열리는 인위적 공간이다. 또한 '마을숲'은 조성 단계부터 온도조절·방풍·보안 등 다양한 기능을 전제하는데, 그 기능은 마을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으며 사회적·문화적·생태적·종교적인 형태로 다양하게 파생돼왔다. 숲을 이루는 나무의 다과(多寡)가 '마을 숲'을 정의 내리진 않는다. 단 몇 그루의 나무에 불과해도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마을숲'으로 불릴 수 있다. '마을숲'은 마을 땅에 조성, 공동 소유로 관리돼왔는데, 이는 '마을숲'이 오랫동안 유지·보존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인류 최초의 인위적 문화 공간인 '마을숲'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공동체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회합공간으로서 오랫동안 마을과 운명을 함께 해왔다.

충청투데이는 산림청 녹색사업단과 공동으로 허물어져가는 '마을숲'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고자 '충청의 마을숲'을 총 20회에 걸쳐 매주 연재한다. 충청투데이는 이번 연재를 통해 숲과 마을이 서로 엉기어 그려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의 근저에 깔린 생태적·역사적·경제적 가치를 재조명, 침체됐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공동체 정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해본다. 또한 '마을숲'의 사회적·문화적 기능을 도시의 조경에 접목해 공동체 정신을 현대적인 가치로 되살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괴산 후평숲

괴산은 이름처럼 나무와 산의 고장이다. 홰나무를 의미하는 괴(槐)는 느티나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과연 괴산에는 당산나무로 대접받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많다. 장연면 오가리의 800살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382호)가 그 대표적인 예다. 군(郡) 면적의 팔 할 가까이가 산으로 이뤄진 괴산에는 송덕리 미선나무, 읍내리 은행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대접받는 귀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길에선 지나간 봉우리의 잔영이 잦아들기도 전에 새로운 봉우리가 잇달려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할 세가 없다. 괴산은 자신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고장이다.

청천면사무소에서 후평도원로를 따라 2㎞가량 동진하면 후평리다. 후평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청천의 뒤뜰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는데, 이 청천의 뒤뜰 마을 앞엔 박대천이 흐르고, 그 마을과 박대천 사이에 마을숲이 놓여있다. 마을과 박대천은 숲을 사이에 두고 내외하되 척지지 않고 어우러져 소박하고 아름답다. 감춤과 드러냄의 절묘함과 물과 나무 그늘의 서늘함에 이끌려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후평숲을 찾는다. 특히 천렵과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여름엔 그 인파가 절정에 달한다. 후평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인데 저마다 경쟁하듯 높이 솟아 있어 인상적이다. 빼어난 주변 경관과 더불어 인근에 국립공원 화양동 계곡, 공림사 등 연계되는 관광지들이 많아 후평숲은 야영장으로도 인기다.

풍수상 하천으로 빠져나가는 지기(地氣)와 강바람을 막고자 조성된 후평숲은 300년의 역사를 헤아릴 정도로 유서 깊다. 일제 강점기, 숲은 배를 건조하기 위해 남벌(濫伐)했던 일본인들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숲은 다시 위기를 맞는다. 피서객들이 문제였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탄 숲은 급속히 훼손되기 시작했다. 비료목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아까시 나무가 왕성하게 생장해 기존 나무들의 생육을 방해하면서 훼손의 정도는 더해갔다. 보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2005년부터 숲속의 잡목을 솎아 내고 느티나무 등을 심는 등 마을숲 복원에 적극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자 '충북 생명의 숲' 등 시민단체가 복원 작업에 동참했다. 이후 녹색자금관리단의 복권기금 1억 6500만원이 투입, 복원공사에 박차를 가했다. 2007년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40일간 벌어진 복원공사를 통해 소나무 70본, 참나무 96주, 느티나무 3주 등이 새롭게 숲에 식재됐다. 은행나무, 벚나무도 헐거웠던 자리를 매우며 숲의 일부를 이뤘다.

숲을 덮고 있는 토양은 다소 굵은 입자를 지닌 모래여서 척박하게 느껴졌다. 숲 해설을 위해 동행했던 반기민 농산촌활성화연구소 소장은 "몇 년 전 박대천의 범람으로 밀려들어온 모래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사람들의 잦은 출입 또한 이유"라며 소나무 가지를 가리켰다. 높다란 기둥 끝에서 무성한 나뭇가지들은 저마다 한눈에도 과해 보일정도로 많은 솔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반 소장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나무들이 자손을 많이 남기려는 본능"이라며 "현재 후평숲 나무들의 생육 환경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 소장은 "취사활동으로 인한 열기는 땅으로 스며들어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입히고,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고기 기름은 잎에 달라붙어 광합성을 방해한다"며 "야영장으로 쓰이는 숲이라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순 없지만 최소한 취사활동이라도 삼가는 게 나무의 건강에 좋다"고 덧붙였다. 수직에 가깝게 솟아오른 높다란 기둥 끝에서 무성한 나뭇가지와 솔방울들이 문득 위태로워 보였다. 혼란스러웠다. 인간과 숲이 얼마만큼 가깝고 멀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대답을 깊은 곳 뿌리 속에 감춘 듯 나무들은 말이 없었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갈무리한 채 기자들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괴산 왕소나무숲

왕소나무숲으로 향하는 길은 꽤나 독특하다. 왕소나무숲은 분명히 충북 괴산에 뿌리박고 있지만 경북 상주 땅을 밟아야만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충북 괴산군 삼송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가 나뉘는 까닭이다. 충북에서 경북, 경북에서 다시 충북… 도계(道界)를 찰나에 넘나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인 안도현은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고 시어로 고백했는데 왕소나무 앞에서는 오체투지라도 해야 격식에 맞을 듯싶다. 꿈틀거리는 줄기가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을 닮아 용송(龍松)으로도 불리는 왕소나무는 13.5m의 수고(樹高)에 4.91m의 둘레, 600년 이상의 수령(樹齡)을 헤아리는 고목이다. 황토를 발라놓은 듯 벌건 왕소나무는 주위에 16그루의 소나무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형상을 닮아 예부터 마을의 당산나무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왔다. 삼송리에는 이름처럼 본디 노송 세 그루가 터를 잡고 있었다고 하나, 6·25 전란 때 두 그루가 불타 지금은 조용한 마을 언저리에 왕소나무 한 그루만 남아 천연기념물(제290호)로 보호 받고 있다. 600여년 간 무수한 빗방울을 머금고 샛바람에 떨었을 용송의 굵은 나뭇가지에선 장구한 세월을 견뎌낸 것들 특유의 존엄함이 묻어난다. 가는 잎 사이로 쪼개지는 자잘한 봄 햇살을 맞으며, 세월에 깊게 패인 굴곡을 바라보며, 줄기에 기대어 솔바람의 악보 없는 가락에 귀 기울이며, 진심으로 용송의 승천이 없기를 바랐다. 후평숲의 소나무들과는 달리 왕소나무에선 솔방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적함이 배어 있는 이곳에서 마을까지는 300m 가량 떨어져 있다. 마을과 숲이 얼마만큼 떨어져야만 또 얼마만큼 가까워야만 서로 조화롭게 비벼질 수 있을까. 기자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질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겨우내 쌓아둔 빛을 흩뿌리려는 나무들로 산은 가장자리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햇살 받아 환한 자리는 마른 풀을 비집고 피어난 양지꽃으로 노랗게 들떠있었다. 봄의 입구로 쏟아지는 햇살의 입자는 다시 들끓었다. 산 많은 괴산에도 왕소나무숲에도 봄은 기어이 발길을 들이고 있었다.


괴산=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