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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심(心)자형으로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 저수지와 노송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천=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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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인공호 의림지(義林池)는 고대인들이 맨몸으로 쌓아올린 대역사의 흔적이다. 물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가두는 일은 생계와 직접적으로 닿아 있어 예나 지금이나 국가적인 대역사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물을 가두고 다스리는 일만이 치수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알았다. 저수지와 가까운 곳에 우거진 숲은 땅의 기운을 습윤하게 유지시키고 지력을 보탠다. 강 상류의 무성한 나무들은 갈수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도록 줄기와 뿌리로 저수 역할을 한다. 고대인들은 물과 가까운 곳에 심은 나무가 제방 너머의 또 다른 제방이자 저수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경험이자 과학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 거대한 인공호와 제림(堤林·제방 위에 조성된 숲)은 운명공동체로 함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힘은 마천루에서 도심을 조망할 때보다 교외서 오래된 흔적들을 들여다볼 때 더 크고 절박하게 느껴진다.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맨몸으로 이뤄내는 것들에 감탄한다. 순결한 인력의 결과물은 투박하지만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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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고(最古)의 현역 저수지, 의림지
제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碧骨堤), 밀양 수산제(守山堤)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다. 그러나 사실상 저수지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벽골제·수산제와는 달리 의림지는 여전히 현역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의림지의 규모는 만수면적 15만 1470㎡, 최대 저수량 551만 1891㎥에 최대 수심도 13.5m에 달한다. 충청지역을 가리키는 호서(湖西)라는 표현도 '의림지의 서쪽'이라는 의미일정도로 의림지는 유서 깊고 거대한 저수지다. 방죽 아래 너른 들판은 예나 지금이나 오래된 못물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다.
의림지의 축조시기에 대해선 한동안 '삼한시대설'이 정설로 인정 받아왔다. 이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주장을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교과서에 실은 까닭이다.
그러나 일각선 삼국사기(잡지(雜志) 신라(新羅) 지리(地理) 참조) 등을 비롯한 문헌기록을 근거로 '삼국시대설' 심지어 '고려시대설'까지 제기되기도 했었다. 신라 진흥왕 때(540~575)에 국원경(國原京·지금의 충주 지역)에 머물렀던 가야금의 대가 우륵(于勒)이 용두산(871m) 골짜기에 둑을 막아 의림지를 조성했다는 설(우륵과 충주지역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잡지(雜志) 신라(新羅) 악(樂) 가야금(加耶琴) 참조)도 있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하다. 미흡한 고증자료들은 이 같은 논란들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0년 충북대 박물관이 의림지의 사적지정을 위해 벌였던 지질조사 결과, 고려시대 이전에 못이 조성됐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로 인해 의림지는 2002년 교과과정 개편 당시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2009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제방과 호저(湖底)에서 퇴적물 시료를 시추해 방사선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제방 가장 안쪽에서 시추한 시료에서 서기 100년 전후한 시기의 퇴적물이 검출됐다. 이로써 2000년 전에도 의림지가 못이었음은 확인된 셈이지만, 인공 제방이었는지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저수지가 망가지면 이 지역의 삶도 망가진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않아도 확실하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축조시기 논쟁에 관계없이 의림지가 물 부족의 고난으로 접질렸던 오래전 사람들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거대한 물그릇이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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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 한가운데엔 자그마한 섬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섬을 가까이서 즐기고자 의림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오리배를 몰고 가기도 한다. 제천=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
2. 의림지 너머 또 다른 제방, 제림
제림의 조성시기에 대해선 명확한 문헌이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일찍부터 숲과 물의 상관관계를 인식했었음을 감안하면 제림의 조성시기와 의림지 축조시기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짐작된다. 정부 역시 의림지와 제림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로 묶어 지난 2006년 10월 명승 20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현재 제림은 공원화돼 제천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관개(灌漑)보다 공원으로써의 기능이 앞서는 의림지는 제천 시민뿐만 아니라 대처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전국적인 경승지다.
제림의 주된 수종은 수 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들이다. 굽이 깊은 소나무들은 저마다 개성적인 모양새로 눈길을 붙든다. 호반을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주된 수종은 버드나무다. 소나무만큼이나 나이든 버드나무들은 올해도 수북한 곁가지를 물가로 늘어뜨리며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은행나무 연둣빛 여린 잎은 점차 계절의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제방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 아래로 오가는 발걸음에 짓이겨진 버찌 열매가 까맣다. 잔잔한 못에 드리우는 나무 그림자가 곱다. 초여름의 호반은 햇살에 이파리 초록빛으로 그을려가는 나무들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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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의 잦은 발길은 나무의 생육에 있어선 치명적이다. 끊임없이 작용하는 답압(踏壓)은 나무뿌리에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이를 방증하듯 제림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수많은 솔방울들을 매달고 있었다. 허약함의 증거다. 뿐만 아니라 소나무의 상당수는 밀생(密生)하고 있어 성장이 양호하지 못한 편이었다. 수세회복을 위해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집중적인 관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아름다움에 끌려 숲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억지로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숲은 과연 얼마큼 멀고 가까워야 공존할 수 있을까. 소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돗자리 주위로 제 무게 못 이겨 떨어진 솔방울들이 그득했다. 소나무들은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부터 가지를 뻗고 있었다. 멀리선 아름답기만 했던 소나무들이 가까이서 문득 안쓰러웠다. 오래된 수면위로 초여름 햇살이 무방비로 쏟아져 내린다. 여수로를 따라 모여든 괴불주머니 노란 빛깔이 맑게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밝다. 나무와 사람사이에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천=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