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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가운 전자음으로 펼쳐낸 외롭고 따뜻한 풍경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0. 30.

힙합도 힙합이지만 요즘 음악 시장에서 일렉트로닉만큼 바라보기에 흥미로운 장르도 드물다.

각 뮤지션들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성의 음악을 들려주는 장르가 또 있었나?

과장을 보태자면 요즘 일렉트로닉 아닌 음악이 또 있나 싶다.

트램폴린은 일렉트로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한 발짝 더 넓혀 준 것 같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11월 2일자 29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차가운 전자음으로 펼쳐낸 외롭고 따뜻한 풍경

[HOOC=정진영 기자]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르 중 하나는 전자 음악, 이른바 일렉트로닉이다. 일렉트로닉은 록, 팝,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결합해 저마다 새로운 형태로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 주류 아이돌들의 음악도 대부분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일 만큼, 요즘에는 일렉트로닉과 관련되지 않은 음악을 찾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트램폴린(Trampauline)은 팝을 기반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일렉트로닉을 선보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은 독보적인 밴드이다. 정규 3집 ‘마지널(Marginal)’을 발표한 트램폴린의 멤버 차효선(신시사이저ㆍ보컬), 김나은(기타), 정다영(베이스)을 지난 22일 서울 합정동 파스텔뮤직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밴드 트램폴린이 정규 3집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김나은(기타), 차효선(신시사이저ㆍ보컬), 정다영(베이스). [사진 제공=파스텔뮤직]


차효선 “새 앨범에 필요한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곡이 몇 곡 나왔고, 그 곡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미미한’ ‘주변부의’라는 뜻을 가진 ‘마지널’이었다”며 “곡에 자신을 개입시켰던 지난 앨범과는 달리 이번 앨범은 제3자의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트램폴린은 지난 2008년 차효선 1인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이후 트램폴린은 김나은을 영입해 2011년 정규 2집 ‘디스 이즈 와이 위 아 폴링 포 이치 아더(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을 발표해 제9회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부문 후보로 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앨범에선 정다영을 영입하며 온전한 밴드의 형태를 갖추는 변화를 거쳤다. 

기존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밴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의 유기적인 조화를 도운 이는 공동 프로듀서를 맡은 박민준(DJ Soulscape)이었다. 박민준은 트램폴린 특유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복고적인 색깔의 비트를 더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차효선은 “밴드 포맷을 갖추게 된 만큼 공간을 확장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큰 변화인데, 비트와 리듬을 유기적으로 엮을 누군가가 필요했다”며 “창고에서 녹음한 듯 거친 질감의 사운드를 원했는데, 박민준은 지나치게 응집되지도 무겁지도 않은 질감과 공간감을 가진 사운드를 만들어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앨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뚜렷한 서사이다. 일부다처제라는 의미를 가진 도발적인 제목으로 다자 연애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타이틀곡 ‘폴리거미(Polygamy)’,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발견한 사랑을 검은 유토피아로 표현하는 ‘블랙 스타(Black Star)’, 김일성 탄생 축제일에 두만강을 건넌 탈북 화가 선무의 탈출기를 그린 ‘선무(Sunmoo)’, 권투 선수인 남편의 패배를 목격한 아내의 이야기 ‘복서스 와이프(Boxer’s Wife)’, 위험을 피하려다 창에 부딪히고 기절한 척하다 이내 다시 날아가는 새에 대한 이야기 ‘리틀 버드(Little Bird)’ 등은 서로 상관없는 서사 같지만 ‘마지널’이란 주제 아래에서 한 덩어리를 이룬다. 재킷을 펼쳐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영어 가사는 음악과 청자 사이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벌린다. 매우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마치 한 발짝 떨어져서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차효선은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앨범으로 주제를 전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한다”며 “영어 가사는 해외 활동을 염두에 둔 부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언어로 다른 나라의 청자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시도”라고 설명했다.

밴드 트램폴린이 정규 3집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차효선(신시사이저ㆍ보컬), 정다영(베이스). 김나은(기타). [사진 제공=파스텔뮤직]
트램폴린은 지난 1월 독일의 일렉트로닉 팝 밴드 랄리푸나(Lali Puna)와 공동으로 음악을 작업하고 독일, 일본 등지에서 공연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인간 대신 기계 안에서 온기를 찾는 순간을 노래한 마지막 수록곡 ‘머신스 아 휴먼(Machines Are Human)’은 그 결과물이자 트램폴린의 음악적 특징을 통찰하는 곡이기도 하다.

차효선은 “도시를 이루는 콘크리트와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이라며 “개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무관심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곡이 노래하는 풍경은 충분히 지금 혹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램폴린은 오는 11월 27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웨스트브릿지에서 단독 콘서트를 벌인다. 앨범의 사운드가 라이브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면 일단 공연장을 찾으면 된다. 멤버들은 앨범보다 라이브에 더 자신감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