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활엽수림은 계곡을 방불케 하는 습윤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은 호흡기관 구석구석을 삼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그 흐름의 절정은 정자에 들어 앉아 누워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숲의 토양은 늘 물이 배어 나오지 않을 만큼 촉촉하게 젖어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낮은 곳은 이끼류의 낙원이다.
나무그늘 아래에 서면 밑동을 덮은 짙은 이끼 냄새가 촉촉한 공기와 뒤섞여 코끝을 싸하게 만든다. 이파리 다복한 가지의 촘촘한 그물코에 거르고 걸러진 부드러운 빛이 정자 처마 끝에 고인다. 숲가에선 무방비로 쏟아지는 햇살이 휘황하다. 한여름의 활엽수림은 햇살 따가운 바깥세상과 유리된 낯익음과 낯설음이 혼재하는 별세계다.

 

 

속리산에서 발원해 북동진하는 달천은 충북 내륙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휘돌아 파행을 거듭한 끝에 충주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상류지역인 청원에서 달천은 19번 국도를 따라 미원면 일대를 관통하는데, 청원군은 지난 1990년 국도변을 따라 이어지는 9개의 경승지를 옥화9경(玉華九景)으로 묶었다. 

   
▲ 옥화9경 중 단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장소는 제6경 금관숲이다. 같은 관내에 위치한 청남대의 명성에 밀려 아직도 생소한 감이 없진 않지만, 최근 들어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숨겨진 명소다. 나이 든 활엽수들이 융숭한 그늘을 드리우는 여름이면 숲 안은 더위를 피해 알음알음 찾아드는 남녀노소로 들끓는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옥화9경은 암벽타기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제1경 운암리 청석굴을 시작으로 제9경 어암리 박대소까지 19번 국도를 따라 12㎞에 걸쳐 곳곳에서 이어진다. 옥화9경 중 단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장소는 제6경 금관숲이다.

같은 관내(官內)에 위치한 청남대의 명성에 밀려 아직도 생소한 감이 없진 않지만, 최근 들어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숨겨진 명소다. 나이 든 활엽수들이 융숭한 그늘을 드리우는 여름이면 숲 안은 더위를 피해 알음알음 찾아드는 남녀노소로 들끓는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금관리에 위치한 금관숲은 본디 함양박씨 종중의 숲이다. 산과 강 사이에 조림된 것으로 보아 방풍림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금관숲은 대대로 18대째까지 이어져 관리돼온 유서 깊은 숲인데, 국도가 숲을 갈라 안 숲과 바깥 숲이 나뉘어졌다. 안 숲엔 함양박씨효열정려기(咸陽朴氏孝烈旌閭記)와 미원초등학교 금관분교가 자리하고 있고, 바깥 숲엔 캠핑장이 조성돼있다. 사람들은 대개 바깥 숲을 금관숲으로 부른다.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에 개방된 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종중의 관리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군(郡)도 나이든 나무들을 함께 돌본다. 현재 금관숲은 자연발생유원지로 지정돼 청원군의 관리를 받고 있다.

1만 3000여 ㎡(2300여 평) 면적의 숲엔 크고 작은 150여 그루의 활엽수가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다툼 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장 높은 나무는 무려 30m의 수고(樹高)에 흉고(胸高)도 1m에 육박한다. 숲엔 참나무, 은행나무, 시무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들이 자라는데 우점종(優占種)은 참나무다.

   
 

숲의 토질은 미사질양토로 상태는 드나드는 사람들의 잦은 답압(踏壓) 탓에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군과 종중의 지속적인 관리 덕에 병해충이 없어 나무들의 생육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금관숲은 마을숲임과 동시에 캠핑장이다. 캠핑장의 규모는 동시에 거실형 텐트를 50여동 가량 펼칠 수 있는 정도다. 주차료는 따로 없지만 입장료조로 약간의 돈(1000원)을 받는다. 오토캠핑(1일 기준 4000원)도 가능하지만, 성수기엔 도로변을 따라 한없이 자동차들이 늘어설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아 주차조차도 어렵다. 사이트 구분을 위한 나무 데크가 따로 설치돼 있진 않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이 넓어 텐트를 펼치는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또한 숲의 바닥엔 잔디나 풀이 자라지 않고 잔돌도 거의 없다. 따라서 텐트 내부에 매트만 깔아도 캠핑을 즐기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여타 휴양림과는 달리 나무그늘이 숲 안 골고루 차별 없이 내려 앉아 숲엔 딱히 명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놀러와서까지 명당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가난한 행태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 함양박씨효열정려기(咸陽朴氏孝烈旌閭記)

숲가엔 관광객들을 위한 개수대(2개소)와 수세식 화장실(2개소) 등 편의시설도 구비돼있다. 캠핑장 규모에 비해 편의시설이 다소 적은 편이지만, 지속적인 관리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숲의 중심 너른 공간엔 족구네트 및 철봉, 평행봉 등 운동기구도 설치돼 있어 단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숲 앞으로 달천이 흐른다. 물이 맑아 돌 하나만 뒤집어도 다슬기 떼가 새카맣다. 다슬기들은 박모가 수면 위에 스며들면 저절로 돌 위로 기어오르지만, 사람들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대낮부터 돌 이곳저곳을 들쑤셔 흙탕물을 만든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달천으로 몰려와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며 캠핑장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송한다. 다만 장마철엔 유량이 늘고 유속이 빨라져 위험하니 물놀이는 삼가야 한다.

숲 밖으로 나오자 흐린 하늘아래 국도변에서 샛노란 기생초가 형형하게 빛났다. 망촛대가 무리지어 비었던 공간을 구름처럼 덮었다. 길 따라 늘어선 보신탕집 앞을 관광버스들이 달음질칠 때마다, 출처를 가늠할 수 없는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안 숲에서 바깥 숲으로 퍼져나갔다.

개 짖는 소리는 마치 초복(初伏)과 중복(中伏)을 무사히 넘긴 그네들의 훈장처럼 들렸다. 바깥 숲의 늙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어린잎의 비린내가 국도변으로 훅 끼쳐왔다. 나이든 남녀들이 보신탕집 안에서 노래방 기계 반주에 기대 느리게 가는 여름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위로 누린내 풍기는 개 짖는 소리가 포개졌다. 삶의 변두리에서 삶의 생생함을 느끼는 일은 아이러니다. 다시금 마을로 적막이 몰려간다.

청원=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