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지난 시대의 것들이 개발의 광풍을 비껴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주거양식의 주류를 이뤘던 초가집과 흙집은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아오자 궁벽함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죄악으로 치부되는 어수선한 현실 속에서 너도 나도 일어나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을 만들었다.

도시에서 영세한 풍경들이 빠르게 지워지는 동안, 농촌에서도 초가삼간 걷어낸 자리마다 슬레이트 지붕이 올라오고, 담배막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마을 곳곳에 우뚝 섰다. 반만년 역사 이래 최대의 천지개벽이 한 세대 동안 벌어졌다. 오래된 것들은 삶의 외곽으로 밀려나 오래도록 숨죽였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것들이 스러져간 지금, 오래된 삶의 양식들이 다시금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래전 영세한 풍경 위에 들어섰던 세련된 것들이 재개발의 바람 속에서 풍화돼 영세해져가고, 사라진 영세한 풍경이 외려 세련된 삶의 양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하나마나한 자기반성이 횡행하는 시대다. 흉물로 무너져가는 새로운 것들의 그림자에 짓눌려 있던 오래된 것들이 새삼 새로워지고 있다.
 

   
▲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마을 숲은 예안이씨 소유로 본디 묘소 주변을 감싸기 위해 조성됐다. 큰 비가 내리면 반석교 아래 반계는 불어난 두 개울물이 부딪혀 넘실거리는데, 이 때 숲은 풍수상 수구막이 역할도 겸한다. 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60여 그루)와 상수리나무(30여 그루)이며, 그밖에 향나무, 개나리, 무궁화, 명자나무 같은 관목(灌木)도 내외곽서 고루 자란다. 그 모습이 수려해 숲은 지난 2001년 산림청 주최 '제2회 아름다운 숲' 마을 숲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산=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설화산 자락에 닿으면 이젠 떠올리기 막막해진 옛 농경사회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외암마을과 만난다. 본디 외암마을은 강 씨와 육 씨, 진 씨 등이 정착해 살면서 형성된 마을인데, 조선 명종 때 선능참봉을 지낸 이연(李延·?~1546) 형제의 낙향으로 예안이씨(禮安李氏)가 세거하게 된다.(예안이씨 대종회 홈페이지(http://www.yeanyi.or.kr) 참조)

마을은 원래 '오양골'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당대의 걸출한 성리학자 이간(李柬·1677~1727)을 배출한 이래로 그의 호를 따 외암(巍巖)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표기 간편화 정책에 따라 외암(外岩)으로 다시 한 번 바뀌었다.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문명을 날렸던 외암 덕에 예안이씨는 마을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마을의 60여 호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예안이씨다.

마을은 설화산(雪華山·441m)을 주산으로 서남쪽의 봉수산을 안대로 삼아 자리 잡고 있다. 설화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내수 역할을 하며 마을 남측을 감싸 돌아 동구에서 객수(客水)인 근대골내와 만나 평촌 쪽으로 흐른다. 마을 어귀 정려를 지나 반석교를 건너면 정자와 송림이 어우러진 마을 숲과 만난다.

숲은 예안이씨 소유로 본디 묘소 주변을 감싸기 위해 조성됐다. 큰 비가 내리면 반석교 아래 반계는 불어난 두 개울물이 부딪혀 넘실거리는데, 이 때 숲은 풍수상 수구막이 역할도 겸한다.

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60여 그루)와 상수리나무(30여 그루)이며, 그밖에 향나무, 개나리, 무궁화, 명자나무 같은 관목(灌木)도 내외곽서 고루 자란다. 그 모습이 수려해 숲은 지난 2001년 산림청 주최 '제2회 아름다운 숲' 마을 숲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은 일단 숲에 잠시 머물며 한숨을 돌린 후 돌담길을 따라 고샅을 훑는다. 그러나 겉모양새와는 달리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고 숲의 바닥으로 답압(踏壓)이 작용하다보니 나무들의 생육 상태가 썩 좋진 못한 편이다. 사유지인데다 묘소 주변과 가까워 드나드는 외지인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고민 또한 크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모질게 내칠 순 없는 노릇이어서 주민들은 묘 주변에 금줄을 치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 예안이씨와는 별도로 아산시도 나서서 숲을 관리하고 있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의 몫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서로에게 무탈하다.

숲에서 벗어나 안길을 따라 느티나무 당목(堂木)을 지나면 사극 세트장 같은 풍경이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샛길을 따라 이끼 묻은 오래된 돌담이 실핏줄처럼 고샅을 잇는다. 집집마다 쌓은 돌담의 길이는 무려 5.3㎞에 달한다. 깨금발을 들어 돌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멋쩍고도 즐거운 일이다.

사람의 눈높이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돌담은 폐쇄와 개방 사이를 적절하게 줄타기 한다. 다 들여다보이진 않지만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다 들여다보일라 치면 능소화 꽃송이, 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가지가 시야를 살며시 가려 애를 태운다. 피식 웃음부터 새나오는 해학이다. 
 

   
 

문중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마을엔 송화댁·참판댁·건재고택(영암댁)·참봉댁 등 벼슬을 택호(宅號)로 가진 반가 고택들이 즐비하다. 그중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는 참판댁과 건재고택(중요민속자료 95호)은 마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택이다. 당시의 것은 초가집, 물레방아,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 상투 튼 사람만 빼고 다 있다. 드라마 '덕이'·'옥이이모'·'야인시대', 영화 '취화선'·'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보고도 정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겹고도 낯선 별세계다. 마을 안길 깊숙한 곳에 외암의 학문적 유업을 기리는 사당(祠堂)이 자리하는데 이곳에선 매년 외암의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학문이 높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 제사를 지낸다.

마을과 숲은 지난 2000년 1월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사람 사는 마을이다. 그 사실이 의심스러워 돌담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밥솥, 냉장고, 전자레인지 같은 집과 어울리지 세간이 눈에 들어 곤혹스럽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집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주인의 나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민속마을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관광지이지만 마을의 오래전 주거양식은 오늘날까지도 주거양식으로서 엄존하고 있다.

주인 잃은 초가에 들어섰다. 마루와 문지방에 드러난 나뭇결의 오래된 시간의 무늬가 마음의 결을 따라 느리게 흐른다. 햇살 가닿지 않는 돌담 위에선 솔이끼가 자그마한 송림을 이뤄냈다. 자그마한 송림의 알싸한 향은 산전수전의 풍상을 견디고 겨우 얻어진 평안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고층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그 자리를 더 높고 세련된 건물에 내줄 적에도 외암리에선 옛 마을들이 새롭다. 고샅을 훑느라 지친 사람들이 다시 숲으로 몰려간다.
 
아산 외암리=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