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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 성준경가옥 소나무 숲은 이 일대에서 소나무 숲의 규모로는 최대 규모다. 36만 5000㎡의 대지에 웃자란 소나무 650여 본이 들어차있다. 소나무들의 수령(樹齡)은 평균 45년가량으로 수고(樹高)도 평균 20m 내외를 오간다. 아산=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
올 여름 들어 유난스러운 비는 복날에도 아랑곳없이 배짱을 부리고 있다. 2011년 충청지역 삼복날 일기예보는 모조리 '흐림 내지 비'였다. 비에 헐린 자리 위로 또 다시 비가 쏟아졌다. 덜 헐린 자리는 재차 흘러드는 급조된 물줄기로 위태로웠다. 수해를 입은 지역에선 어김없이 물 부족 사태가 이어졌다. 천하에 물이 넘쳐나는데 쓸 만한 물이 없다. 수해 관련 뉴스가 매 시간 다급히 비처럼 쏟아졌다. 곳곳에서 제방이 무너지고 논밭이 침수됐다. 그런데 숲이 무너졌다는 뉴스는 들려오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들려올만한데 노거수 몇 그루가 쓰러졌다는 비보 외엔 무소식이다. 무너진 숲은 대개 토목공사 등 사람 손때를 무리하게 탄 곳과 가까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오랜 세월 그래왔듯 마을 숲은 무섭게 내린 빗속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무너진 모양이다. 새삼 그간 취재차 드나들었던 마을 숲들이 새로워 보였다.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엔 아산시의 명물 중 하나인 성준경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성준경가옥은 1825년(조선 순조25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194호로 지정돼있다. 그런데 성준경가옥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지어진 여타 반가고택과는 달리, 안내판 없인 찾기 힘든 외진 곳에 별장처럼 숨어있다.
진입로에서 솟을대문을 대신하는 것은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다. 그중 왼쪽에 자리 잡은 큰 나무은 수고(樹高) 32m, 둘레 5.5m가량의 거대한 크기로 약 4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나무를 베려 하자 나무가 구슬프게 울어 베지 못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확인할 길은 없으나 나무는 한눈에도 영물처럼 보였다. 아산시는 이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바깥마당엔 푸른 잔디가 환한데 제 무게 못 이긴 가지를 무지개처럼 늘어뜨린 소나무들이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성준경가옥은 완경사지에 깊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들어앉아있다. 일반적인 반가고택과는 달리 그 규모가 소박해서 의외다. 또한 성준경가옥은 택향(宅向)으로 꺼리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성준경가옥은 도고산(道高山·481.8m)을 배산(背山)하고 집 앞 동산을 안산(案山)으로 삼아 집터를 꾸리고 있다. 택향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가옥 배치다. 경북 청도군 임당리 내시고택도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양식이다. 그러나 성준경가옥에 이 같은 해석은 무리인 듯싶다. 반가고택의 택호엔 대게 벼슬이름이 따라붙는데 반해 성준경가옥엔 주인의 이름이 붙어있다. 성준경은 벼슬과는 별 인연이 없던 인물로 보인다. 풍수적인 이유로 부러 북향으로 가옥을 지었다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가옥 뒤편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비 내리는 숲은 몽환적이다. 씨알 굵은 빗방울은 무성한 나뭇가지와 이파리에 부딪히고 으깨져 미립자로 흩어지고, 마침내 물안개를 이뤄 숲 안을 부유한다. 폭우가 쏟아져도 대오를 갖춘 강성한 소나무 숲 안에서 빗방울은 우산과 부딪혀도 요란하게 소리를 내지르지 않는다. 다만 온 몸으로 고요하게 스며들 뿐이다.
숲은 이 일대에서 소나무 숲의 규모로는 최대 규모다. 36만 5000㎡의 대지에 웃자란 소나무 650여 본이 들어차있다. 소나무들의 수령(樹齡)은 평균 45년가량으로 수고(樹高)도 평균 20m 내외를 오간다. 지난 2008년부터 충남도는 '아름다운 100대 소나무 숲 가꾸기 사업'을 실시해 숲의 병든 나무를 솎아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소나무림 내에 일부 자생하고 있는 활엽수 잡목과 고사된 리기다소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소나무를 식재함과 동시에 재선충 방제도 이어졌다. 이후 숲은 생태적으로 안정화돼 남은 나무들이 더욱 푸르고 강성해졌다. 굴곡 없이 우뚝 솟은 소나무들이 이뤄내는 숲은 마치 밀림지대 원시림을 연상시킨다. 우듬지에서만 가지를 뻗은 소나무들은 줄기에선 잔가지를 내지 않아 더욱 높아보였다. 나무 등걸을 타고 올라와 줄기를 덮은 담쟁이덩굴이 이채롭다. 가꾼 흔적과 자연스러운 모습이 공존하는 좋은 예다. 숲은 안면도 소나무 숲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솔방울을 매달고 있는 소나무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나무들의 생육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임을 알 수 있다.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답압(踏壓) 등 생육을 방해하는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사유지와 맞닿아 있어 숲엔 따로 진을 쳐 머물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다. 이 일대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임도를 따라 도고산 산행을 하다 숲을 스쳐지나갈 따름이다. 대놓고 공원화 된 숲이 아닌 바에야 사람과 숲의 인연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적당해 보인다.
바람이 물안개로 떠돌던 빗방울들을 거둬들인다. 우산을 접었다. 청량한 기운 머금은 다습한 솔바람이 사방에서 달려드니 도리가 없다. 진초록 담쟁이덩굴과 소나무 붉은 껍질이 보색을 이뤄 눈가에 물든다. 비 오는 날 숲의 몽환은 구태여 찾아오는 자들의 몫이다. 물안개가 몸 구석구석으로 스민다. 땀에 절어 허덕이던 몸뚱이가 살짝 시려오는 걸 보니 이제 가을이 오려나 보다. <끝>
아산=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취재후기 : 공존의 키워드 ‘不可近不可遠’
기자들은 ‘충청의 마을 숲’ 연재를 통해 숲과 마을이 서로 엉기어 그려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의 근저에 깔린 생태적·역사적·경제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침체됐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공동체 정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너무도 지고했는지 기자들은 부족한 말들을 거느리고 숲의 윤곽을 쫓아가는 일만으로도 기진맥진했다. 결국 지고한 목표는 흐릿하게 멀어져 가고 글로 남은 것은 숲에 서린 옛 이야기의 일부와 주관화된 풍경의 편린뿐이다.
숲의 어깨 위에 실린 삶은 치열하고도 무거웠다. 무성한 솔방울에 제 무게 못 이겨 늘어진 가지와 줄기를 검불처럼 덮은 잠아(潛芽)가 처절한 생의지(生意志)의 발로임을 숲에서 겨우 알았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삼겹살 기름이 잎의 숨구멍을 막고, 모닥불과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이 뿌리를 절단 낸다는 사실도 겨우 알았다.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들이 숲에겐 아름답지 않았고, 사람에게 즐거운 것들이 숲에겐 괴로움이었다. 숲을 짓누르는 하중은 대개 숲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기자들은 숲과 사람의 공존방안에 대해 엿듣고자 숲의 언어에 귀 기울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속수무책을 뚫고 돋아난 키워드 하나가 조금이나마 민망함을 덜어낸다.
사람들의 손끝에서 열리는 '인위적' 공간이면서도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면 허물어지는 숲인 마을 숲.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기자들이 20회 연재 속에서 건져낸 공존의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