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내 개인적인 인생 목표 중 하나는 지천명을 전후해 큰 문학상을 하나 받는 일이었다. 왜 하필 지천명이라는 물음에 답은 두 가지다.
첫째, 재능 있는 수많은 예비 혹은 기성 문학인들을 제치고 비전공자인 내가 문학상을 거머쥐는 일은 족히 20년 이상 투자해야 겨우 벌어질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7년 넘게 신춘문예와 각종 대학문학상에 문을 두드려왔지만 최종심은커녕 지면에 단 한 번도 언급된 일조차 없는 내게 그런 영광은 요원해 보였다. 나는 대학 재학시절 정말 대산대학문학상을 받고 싶었다. 문학동네소설상과 한겨레문학상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작가 지망생이 문단에 데뷔하며 주목받는데 이만한 쾌속 이동수단이 어디에 있나?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소설을 써도 그러한 문학상들의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곡을 만들다 가사를 쓰면서 야매로 시작한 내 글쓰기는 여전히 부족하다. 결코 겸손이 아니다. 그러한 재능 부족은 둘째 치고 내 생각과 문장은 내 또래 문학 지망생들이 지니고 있는 참신함과 거리가 멀다. 사실 나는 매우 보수적인 ‘꼰대’다. 어쩌다 내가 내 부모 세대보다 더한 ‘꼰대’ 마인드를 탑재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위에 언급된 문학상들이 ‘꼰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간의 수상작들이 증명하고 있다.
나는 평소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와 같은 계간지 구독 및 단행본을 읽기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내게 안목이 없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별개로 나는 그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부럽다. 나는 부끄럽게도 경험한 만큼밖에 못 쓴다. 그래도 한 20년 쓰다보면 막연하게 동인문학상의 기준에는 적합해지는 작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그래서 지천명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대학 졸업 직전 어떻게 한양대학보 문예상, 그것도 대상을 수상했는지 의문이다.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은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여기저기서 이게 무슨 판타지냐는 애정 어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나도 동감한다. 그리고 죄송하다. 이미 수도 없이 언급한 바이지만 난 판타지를 잘 모른다.
둘째, 너무 어이없는 발언이지만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훈 선생의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나이가 54세였다. 그게 이유다.
- 책에 대한 잡담...
방금 전 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저 ‘표백’을 일독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매년 챙겨보는 편이지만 올해엔 감회가 남다르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비전공자의 수상작이라니... 게다가 내가 받고 싶었던 상을 수상하다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출간 직후 바로 단행본을 구입했지만 읽을 시간이 없어 이제야 겨우 일독했다.
역시 기자답다. 김훈 식의 탐미적인 단문과는 거리가 멀고 거칠지만 가볍고 날랜 문장의 연속이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찌르는 문장. 기자질을 하다 보니 이런 문장에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직업병이다. 글이란 또 그 사람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글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기사는 예외) 소설에 드러난 작가의 자아는 자신만만하고 똑똑하며 냉소적이었다. 자칫 거만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같이 일하는 자사, 타사 선배 기자들로부터 받은 느낌을 글에서도 받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의 글은 6년이나 어린 나보다도 훨씬 젊어 보였다. 나는 결코 그렇게 쓰지 못한다.
읽는 내내 감탄과 불편이 동거했다.
감탄...
등장인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논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력 있게 밀고 나가는 작가의 저력이 놀라웠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균형 잡힌 논리가 매력적이다. 또한 누가 뭐래도 눈에 잘 읽히는 글이 독자에겐 최고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이보다 더 문장이 잘 읽히는 소설은 없었다. 쉽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다시 뒤로 넘어가는 일도 잦았다. 또한 쓸데없이 욕심내 이런 저런 교묘한 장치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담으려 애쓰지 않은 점도 좋았다. 그리고 ‘표백’이라는 표현... 완성된 질서를 무력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세대... 지금의 사회담론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통찰할 수 있을까? 이를 신문 헤드라인에 신조어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이 소설은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황남기 헌법? ㅋㅋ 맨 처음 사시 공부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정말 멋진 요약서다. 요즘은 사시용 헌법 교재를 출간하지 않는 것 같지만... 공무원 수험시장이 훨씬 크긴 하지.
불편...
“개처럼 살기보다 영웅처럼 죽고 싶다” - 영화 ‘첩혈쌍웅’ 中
“죽은 영웅보다 살아남은 쓰레기가 낫지” - 무협소설 ‘대도오’ 中
예전엔 ‘첩혈쌍웅’의 대사가 더 멋있었는데 이젠 ‘대도오’의 대사가 더 공감된다.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자라지도(내 소설 속 에피소드처럼 똥을 쌀 때 튀기는 똥물을 피해야 하는 곳에서 매우 없이 자랐다.) 대단한 교육의 혜택을 받지도(학원, 과외 등 사교육의 혜택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방안에 걸린 유치원 졸업 사진이 부럽다.) 못했다. 공부도 야매로 했다. 음악도 글쓰기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야매이긴 마찬가지다. 특별히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일도 없다. 사회적 계층으로 보면 나는 ‘중하하’ 정도의 환경에서 적수공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 남들이 보기엔 의외로 나는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내 정치적 스탠스가 지극히 보수적이라는데 놀라는 사람도 많다.
사실 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의문을 제기하는 88만원 세대 청년층보다 ‘우리 땐 그렇게 했는데 너희들은 왜 못해’라는 식의 중장년층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여전히 개인의 노력과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하나? 결코 내가 넉넉하게 벌어서, 물려받을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지방지 기자의 연봉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에서 형성된다. 딱히 바깥에서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상속 재산은커녕 물려받을 빚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특단의 계기가 없는 한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특별히 나은 삶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난 별로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얼마 전 문학상 수상이후 약간 잃을 게 생긴 듯하지만) 그런데도 왜 나는 시대정신 혹은 거대담론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구조적 모순에 분노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소설 속 담론 주위에서 겉돌고 있는가? 동의는 못하는 데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도 막연해 막연한 표현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하다.
막연하게 말하자면...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런데 위대한 일을 이뤄내야만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해지는가? 그 결과 위대해지는 것은 세연 같은 소수의 선구자들 뿐일 텐데. 누구에게나 삶의 목표란 행복 아닌가? 또한 행복이란 저마다 크기도 모양도 다른 모습 아닌가? 표백사회에선 소시민적인 행복조차 꿈 꿀 수있는 여지가 없는 것일까? 나는 3년 후 www.thisisthereason.com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몹시 궁금하다.
- 그냥 잡담...
어제 취재차 천안에 갔다가 잠시 신세계 백화점 교보문고에 들렀다. 내 책이 신간 코너에 놓여있었다. 아직도 나는 내 소설이 낯설고 불편할 때가 많다. 내 책을 펼쳐들 때마다 집필당시의 나를 둘러싼 절망에 가까웠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으니 겁도 없었다. 지금도 별로 겁대가리가 없다. 얼마 전 대한민국 최고 높이(62m) 청풍호 번지점프에서 낙하할 때 거침없이 뛰어내렸던 이유도 “포기하면 환불 안 된다”는 안전요원의 으름장이 짜증났기 때문이었으니 말 다했다. 아직도 몇 년 전의 절망적인 기억 속을 헤매면서도 나는 신간코너에 놓인 내 책이 조금 더 잘 보이라고 같이 취재를 간 후배와 슬쩍 책의 자리를 옮겼다. 우스웠다.
그리고 다시 천명관의 '고래'를 읽기 시작했다. 새삼 느끼지만 참으로 무서운 소설이다. 이런 상상력과 구라빨이 미치도록 부럽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몇 년만에 서랍을 정리하니 추억이 방울방울 - Part 1 (0) | 2011.09.13 |
---|---|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0) | 2011.09.11 |
드디어 '도화촌기행'이 출간됐다. (0) | 2011.07.03 |
'도화촌기행' 이번 주말 개봉 박두 (0) | 2011.06.30 |
'도화촌기행' 표지가 나왔다 (0) | 201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