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가 느껴졌다.
무작정 회사에 사직서를 들이밀었다.
그런 회의가 들은지는 꽤 오래됐는데, 최근에는 기사를쓰기 위해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워졌다.(자세한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한 잔 하면 들을 수 있다.)
와이프도 평소 내 모습이 괴로워 보였는지 나의 자발적인 백수행을 막지 않았다.
그만둔 뒤 새로운 소설을 쓸 작정이었다.
그렇게 내 생애 두 번째 퇴사를 감행하려는데, 이를 저지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하나둘씩 술자리로 찾아와 다시 한 번 생각해줄 것을 요청하니 마음이 찡해졌다.
고민 끝에 퇴사를 보류했다.
하지만 이미 퇴사 결정을 내렸던 마음을 모두 거둬들이긴 쉽지 않았다.
7년 전 소설 '도화촌기행'을 쓰기 전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느라 서울에서 고향인 대전까지 걸어갔던 일이 있다.
나를 조금 못살게 굴면 무언가 좋은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괴롭힐 방법을 알아보니 자전거 국토 종주가 있었다.
예전에 걸어서 대전까지 갔던 경험만 생각하고 내 몸 상태는 생각하지 않은 채 바로 자전거와 각종 액세서리 등을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출발했다.
대책 없는 출발이었다.
자전거는 미니벨로를 구입했다.
MTB나 로드바이크를 구매하는 게 맞다.
하지만 별로 속도를 내고 싶지 않았다.
또 접이식인데다 가벼워서 이동도 편했다.
자전거 전문점에서 들어보고 가장 가벼운 녀석으로 구매했다.
이밖에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예비용 튜브와 펑크패치, 공구세트, 펌프 등을 준비했다.
자전거 국토 종주 길은 인천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시작된다.
아라뱃길 서해갑문은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에서 멀지 않다.
길에 피어있는 꽃이라곤 감국 등 국화류가 전부였다.
올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국토종주의 시작점이다.
632,945km라니... 어마어마하다.
예전에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어갔던 거리보다 3~4배는 족히 넘는 거리이다.
오늘 목표는 일단 인천과 김포를 거쳐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억새가 한창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 있다.
바로 인증수첩인데,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아라타워에서 판다.
인증수첩에 길목마다 설치된 인증도장을 모두 찍으면 메달도 준다.
이왕 가는 길인데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가격은 4500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 카운터에서 수첩을 판다.
수첩과 지도가 한 세트이다.
수첩을 구입한 뒤 나오면 첫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아라 서해갑문 인증센터가 나온다.
당연히 찍어줘야지.
다음 인증센터까지 거리는 20km.
길에는 이렇게 국토종주길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곳곳에 돼 있다.
처음에 먹은 자전거 국토 종주 여행의 목적은 고발성 취재였다.
직접 눈으로 한강과 낙동강의 물상태를 보고 얼마나 4대강 사업의 정당성에 대해 논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전거 길고 가까운 곳의 물상태는 깨끗했고, 더욱 문제는 자전거길이 강과 아주 가까이에 맞닿은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 취재 목적은 왠지 실패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라뱃길 구간은 딱히 좋은 경치를 가진 건 아니다.
다만 길 상태는 좋은 편이다.
벌써부터 힘들다.
길 중간중간마다 편의점이 다수 설치 돼 있다.
수시로 연료와 수분 보충을 했다.
김포시 초입에서 만난 철을 모르는 개나리.
김포시로 진입하자 노면 상태가 엉망인 구간이 꽤 보였다.
심지어 주차까지 돼 있어 자전거를 타기 어려운 구간도 있었다.
두 번째 인증지 아라 한강갑문 인증센터.
도장 찍을 때 모습은 이렇다.
날이 어두워져서 후미등과 전조등의 전원을 켰다.
날이 흐리고 춥기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울이란 사실을 팍팍 깨닫게 만드는 풍경들.
서울 구간의 첫 번째 인증센터 여의도 서울 마리나 인증센터이다.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인지 인증센터 내부의 조명이 켜지지 않았다.
이는 다음에 만난 인증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봄이나 여름에는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서울 구간의 매력은 야경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 눈에 담은 풍경이 많았다.
이 곳의 조명도 작동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이 날의 목표는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도 무작정 달렸다.
하남시청 부근의 한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내 몸이 이렇게 엉멍진창인 상태인 줄은 미처 몰랐다.
움직일 때마다 신음 소리가 나온다.
과연 내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자전거 국토종주 > 무작정 자전거 국토종주(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11.15) 어설픈 꼼수는 화를 부른다(대구 강정보~창녕 남지읍) (0) | 2016.11.16 |
---|---|
(2016.11.14) 좋은 관성, 나쁜 관성(상주 상주보~대구 강정보) (0) | 2016.11.14 |
(2016.11.13) 왜 내가 이러고 있나(충주 수안보~상주 상풍교) (0) | 2016.11.13 |
(2016.11.12)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여주 강천보~충주 수안보) (0) | 2016.11.13 |
(2016.11.11) 무식해서 몸으로 알게 되는 것들(하남-여주) (0) | 2016.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