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링크 : http://www.groovers.kr/column/LOTUSX2
전기성 [주파수를 나에게]
학창시절에 가장 어려웠던 과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물리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왼손의 검지를 자기장의 방향, 중지를 전류의 방향으로 했을 때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이 도선이 받는 힘의 방향이 된다는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형상화한 이 앨범의 재킷 이미지는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다. 앨범 이름에는 ‘주파수’, 밴드 이름에는 ‘전기’란 단어까지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앨범에 인류에겐 너무 이른 음악이 담겨 있지 않느냐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밴드 전기성의 첫 정규앨범 [주파수를 나에게]는 이들의 표현처럼 오히려 모든 이들이 4차 산업혁명의 미래로 향할 때 홀로 시대를 역주행하는 음악으로 가득 찬 앨범이니 말이다.
80~90년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피식 웃음을 자아낼 인트로 ‘비디오 보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소통에서 대화가 사라지는 현실을 꼬집은 ‘주파수를 나에게’, 새로운 문명이 사라진 인류가 남긴 과거의 잔해 속에서 과오를 추론한다는 세기말적인 내용을 담은 ‘사이코메트리-O’, 조용필의 히트곡 ‘꿈’의 쓸쓸한 가사와 정서를 차용해 도시의 삭막함을 증오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도시의 밤’ 등. 이 앨범에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은 11곡이 실려있다. 전기성은 과거 첨단 기술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촌스럽게 들리는 신시사이저 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 모든 이야기를 비튼다. 그루버스의 고음질 음원 서비스는 이 앨범의 전반에 깔린 빈티지한 분위기에 세련미를 더하며 독특한 이질감을 전한다. 전기성은 "뒤처진 오늘을 사는 예술인으로서 21세기에 대한 20세기식 고찰은 한번은 털어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하며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중 디스토피아를 보고 말았다"고 말했다. 80~90년대 뜨거운 변화의 물결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이 앨범에 담긴 미래와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를 비교해 보는 작업도 즐거울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을 과거의 추억으로 즐길지, 아니면 미래를 향한 경고로 받아들일지는 청자의 몫이다. (정진영)
'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 > 앨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라솔 [아무것도 아닌 사람] (0) | 2018.01.17 |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 (0) | 2018.01.17 |
염신혜 [고요] (0) | 2018.01.17 |
링고 스타 [Give More Love] (0) | 2018.01.17 |
엘비스 프레슬리 [Christmas With Elvis And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0) | 2018.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