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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앨범 리뷰

<명반 100> 32위. 김수철 1집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8. 9. 22.

1998년,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장을 발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앨범 추천, 선정, 리뷰 작성 작업에 참여했다.

김수철 1집 발표를 끝으로 내가 리뷰 작성에 참여한 앨범은 모두 발표됐다.

내가 리뷰를 작성한 앨범은 다음과 같다.


32위. 김수철 1집

51위. 크래쉬 1집 [Endless Supply of Pain]

52위. 서태지와 아이들 2집

94위.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별일 없이 산다]





원문 링크 : https://www.melon.com/masterpiece/inform.htm?rank=32&albumId=310201



전체 순위
32
작은 거인 김수철1983
김수철

김수철에 관한 세간의 이미지는 커다란 뿔테 안경을 낀 얼굴에 기타를 메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어리숙한 모습의 키 작은 사내다. 그는 중장년 층의 기억에 ‘못다 핀 꽃 한 송이’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등 왕년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로, 그보다 젊은이의 기억엔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가 ‘치키치키 차카차카’를 부른 주인공 정도로 남아 있다. 음악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의 예사롭지 않은 기타 연주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에 주목했을지도 모르겠다.

김수철에 관한 어떤 단편적인 이미지도 그를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영역에 도전했던 아티스트일 뿐만 아니라, 도전했던 모든 영역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거장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잘 알고 있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실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수철이 지난 1983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은 뛰어난 완성도를 넘어 향후 그가 펼쳐나갈 방대한 음악 세계의 청사진을 보여줬던 명작이다.

지난 1977년 TBC 연포가요제에 ‘퀘스천’이란 4인조 밴드로 출전했던 김수철은 이듬해 작은거인을 결성,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서 ‘일곱 색깔 무지개’로 그룹 부문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1979년 데뷔 앨범을 발매한 작은거인은 1981년 2집으로 탁월한 음악성까지 인정받았다. 그러나 작은거인은 멤버들의 입대와 유학 등 진로문제로 곧 해체됐다. 김수철 또한 자신의 활동을 숨겨야 했을 정도로 집안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첫 솔로 앨범을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김수철이 작은거인에서 보여줬던 음악적 실험은 솔로 앨범에서 만개했다. 이 앨범 최고의 히트곡 ‘못다 핀 꽃 한 송이’는 전통 가요의 정서, 극적인 구성을 가진 멜로디, 화려한 스트링 연주를 더한 편곡이 절묘하게 결합한 당대 최고 수준의 팝이었다. 김수철이 작은거인 시절에 선보였던 ‘세월’, ‘별리’, ‘내일’ 등은 ‘못다 핀 꽃 한 송이’ 못지않은 세련된 편곡을 통해 재탄생해 지금까지 불리는 히트곡으로 남았다. 토속적인 멜로디 위에 백제 노래 ‘정읍사(井邑詞)’를 연상케 하는 애절한 가사를 올린 ‘별리’와 10분여의 파격적인 길이와 전위적인 사운드로 앨범 B면의 절반을 채우는 ‘별리(경음악)’는 향후 그가 걸어갈 국악을 향한 긴 여정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곡이다. 경쾌한 록 넘버 ‘다시는 사랑을 안 할 테야’와 ‘내일’에서 김수철이 들려주는 기타 솔로는 그가 왜 신중현의 뒤를 잇는 한국의 ‘기타 히어로’인지 증명하는 중요한 곡이다. 그의 별명 ‘작은거인’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이 ‘고별 앨범’은 뜻하지 않게 김수철 음악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정녕 그대를’ ‘내일’ 등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요즘 말로 ‘음원 줄 세우기’에 가까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각 방송국의 연말 가수상에 이름을 올린 김수철은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까지 거머쥐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김수철은 이 앨범 때문에 음악을 접고 싶어도 접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의 이후 행보를 돌이켜보면 이 앨범의 히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축복이었다.

추천곡: ‘별리(경음악)’
이 곡을 단순히 ‘별리’의 MR(반주)로 생각하고 듣는다면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작은거인 시절에 이미 ‘어둠의 세계’ 같은 실험적인 연주곡을 들려줬던 김수철은 무려 10분에 걸쳐 그보다 더욱 실험적인 음악과 사운드를 이 곡에 담아냈다. 마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초창기 사이키델릭 연주곡을 연상케 하는 이 곡은 향후 김수철의 다양한 음악 실험을 예고한 필청 트랙이다.

- writer 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