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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앨범 리뷰

그레이트볼스 1집 [모두가 로큰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8. 9. 22.

밴드 그레이트볼스가 첫 정규 앨범 [모두가 로큰롤]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에서 로큰롤을 정규 앨범으로 만나는 일은 신기한 일이다.
오랜 세월 로큰롤 외길인생을 걷는 성수 형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오랜만에 앨범 해설지를 썼다.

해설지는 성격상 당연히 좋은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이 앨범은 진짜 괜찮은 앨범이다. 추천한다.



<별종의 전성시대를 기다리며>

대한민국에서 로큰롤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장르다. 로큰롤이란 단어를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로큰롤이 어떤 음악인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게 현실이니 말이다. 록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차지해 본 역사가 없는 이 땅에서, 록보다 앞서 등장한 로큰롤이 지류라도 형성해 볼 겨를은 없었다. ‘록스타’가 없었으니 ‘로큰롤 스타’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예나 지금이나 세간에서 로큰롤이란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현란하게 춤을 추며 ‘Hound Dog’를 부르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모습일 것이다. 조금 더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척 베리(Chuck Berry), 비틀스(The Beatles) 등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혹자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남진을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쏟아내더라도 바꿀 수 없는 ‘팩트’는 대한민국이 로큰롤의 불모지란 사실이다.


느닷없이 등장해 전 세계 피겨계를 평정했던 김연아 선수처럼, 불모지에도 별종은 존재하는 법이다. 시간을 십수 년 전으로 돌려보면 이 땅에도 로큰롤을 들려줬던 별종이 있었다. 지난 2005년 홍대 앞 클럽 ‘퇴폐공연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이명박 서울시장을 직접 클럽으로 불러들여 라이브를 들려줘 화제를 모았던 밴드 ‘오! 부라더스(Oh! Brothers)’ 말이다. 활발한 라이브 활동에 더해 정규앨범도 부지런히 4장이나 내놓았던 ‘오! 부라더스’의 활동 중단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쉬움은 길어질수록 미련으로 남는 법이다. ‘오! 부라더스’의 보컬리스트 최성수는 아쉬움을 미련으로 남기는 대신 해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를 중심으로 밴드 빌리카터의 드러머 이현준, 밴드 루스터라이드를 거친 기타리스트 서정현, 피아노 연주자 손희은이 결성한 밴드 그레이트볼스(The Greatballs)가 지난 2016년에 내놓은 EP [The Great Rock‘n’Roll of The Greatballs]는 그 시작이었다. 그야말로 50년대 로큰롤을 담은 이 EP는 트렌드와 동떨어져 있었지만, 그러므로 새롭게 들리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준 결과물이었다. 그레이트볼스는 이 EP로 걸은 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레이트볼스의 첫 정규앨범 [모두가 로큰롤]은 밴드의 로큰롤을 향한 열정을 집약한 수작이다.

이 앨범은 마치 타임머신에 탑승한 것처럼 청자를 과거 로큰롤의 시대로 소환한다. 50년대 로큰롤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그레이트볼스는 척 베리의 명반 [The Anthology]를 레퍼런스로 삼아 춘천 상상마당 스튜디오에서 이승환 엔지니어와 협업해 모든 악기 연주를 이틀에 걸쳐 원테이크로 녹음했다. 비틀스를 상징하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마일스 쇼웰(Miles Showell)이 릴테이프로 마스터링을 진행해 빈티지 사운드를 재현했다. 이 앨범이 곳곳에서 들쑥날쑥한 호흡의 그루브를 드러내며 날것의 느낌을 풀풀 풍기는 이유다.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세상을 빙빙 돌리는 법이 없다. 때로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솔직하고, 때로는 가슴이 뜨끔해질 정도로 날카롭다. 오프닝 트랙 ‘All Right’은 피아노 연주가 이끄는 부기우기 넘버로 곡으로 킹스턴 루디스카의 성낙원이 색소폰 연주를 더해 빈티지한 맛을 더했다. 그레이트볼스의 첫 EP를 먼저 들었던 팬이라면 이번 앨범에 새롭게 실린 ‘부기우기 보이’와 ‘수기 알라뷰’를 비교해 듣는 일도 잔재미를 줄 것이다.

닉 쿠란(Nick Curran)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멋.잘.멋’과 로커빌리 스타일의 ‘아끼고 사랑해’의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솔직한 가사에 실소를 머금었다면, ‘쫌 한 번만’의 가사는 솔직함이 극에 달해 실소를 폭소로 바꿀 것이다. 사람을 결국 가장 ‘찌질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랑 아니던가. 대놓고 고기 맛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믿고 먹는 고기’, "성수야 니 어디 사노?"란 말에 "응. 나 못살아"란 어처구니없는 답변으로 대응하는 ‘넌 어디 살아’를 듣다 보면 이 밴드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그 끝이 궁금해질 정도다.

이 앨범이 그렇다고 마냥 웃음만 주는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분명한 행적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4대강 사업에서 드러난 부조리를 각각 꼬집는 ‘Bad Girl’과 ‘쥐를 잡자’는 잘 만든 마당놀이처럼 해학적이다. 기타와 베이스의 유니즌 플레이와 색소폰 연주가 어우러진 ‘그녀에게 로큰롤’은 생기 넘치는 유기적인 연주로 그레이트볼스의 음악적 역량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다양성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다양성을 만들어 나가는 존재는 별종이다. 다시금 로큰롤을 향한 즐거움과 열정을 되새기는 마지막 트랙 ‘모두가 로큰롤’은 그레이트볼스가 앞으로도 별종으로 세상에 남아있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그레이트볼스는 오래된 팬의 이름을 ‘옥련이’란 수록곡에 담았다. 밴드의 새로운 ‘팬송’이 앞으로도 새로운 앨범에 계속 담기는 모습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정진영(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