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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알레그로: 지나간 30대 향한 솔직한 감정을 기록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6. 24.

일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이 겹쳐져서 거의 반년만에 뮤지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은 최근 정규 2집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알레그로다.
'웰메이드'란 말이 부족하지 않은 좋은 팝 앨범인데, 피지컬로 나오지 않아 너무 아쉽다.

원문 링크 : https://diffsound.com/%ec%95%8c%eb%a0%88%ea%b7%b8%eb%a1%9c-%ec%a7%80%eb%82%98%ea%b0%84-30%eb%8c%80-%ed%96%a5%ed%95%9c-%ec%86%94%ec%a7%81%ed%95%9c-%ea%b0%90%ec%a0%95%ec%9d%84-%ea%b8%b0%eb%a1%9d%ed%96%88%eb%8b%a4/





알레그로: 지나간 30대 향한 솔직한 감정을 기록했다

지나간 시간은 아쉽지만,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효용성을 잃진 않는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쌓은 추억은 현재를 견디게 하는 힘이 돼 주기도 하니 말이다. 과거사 정리가 현재를 재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듯이,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살피는 일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싱어송라이터 알레그로(Allegrow)가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는 데 이용한 수단은 음악이다.

알레그로는 2013년에 발표한 데뷔작 EP [뉘 누아르(Nuit Noire)]와 2016년 첫 정규 앨범 [도시여행지침서]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낸 바 있다. 그가 3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사라지는 것들: Full]에 담아낸 건 자신의 30대다. 30대는 흔히 ‘인생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지만, 이를 제대로 즐기고 40대로 걸어가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좋은 시절을 좋은 시절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내 버리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최근 서울 중구 다동의 한 주점에서 그를 만나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싱어송라이터 알레그로


우선 정규앨범 발매 소감을 듣고 싶다.
부지런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정규 1집 ‘도시여행지침서’ 발표 이후 새 정규 앨범을 내는 데 3년이나 걸렸다.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틈틈이 싱글, EP 등으로 신곡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새 정규 앨범을 완성하고 나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앨범 제작을 도와주신 모든 분과 앨범을 기다려 준 모든 분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라지는 것들: Full]이란 앨범 타이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내 30대를 관통하는 앨범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 30대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참 많았다. 심하게 가슴앓이도 해봤고, 사랑도 원 없이 받아 봤다.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했으며 미움도 받아봤고,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상처를 받기도 한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통해 배운 게 많다. 편협하고 옹졸한 마음도 나이가 들어가며 어느 정도 누그러졌고, 불합리를 분노로만 받아치던 치기도 어느새 많이 가라앉았다. 내가 겪은 30대의 모든 감정 역시 사라질 것이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앨범 타이틀을 그렇게 지은 이유다.

타이틀곡 ‘밤과 낮’을 비롯해 수록곡마다 짧은 멘트가 하나씩 달려 있다. ‘눈부시게 반짝이던’의 “너였어서, 내가 사는걸”, ‘4월의 그대는’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구나”처럼 말리다. 수록곡들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싶다.
이번 앨범은 내 인생에서 어느 특정 지점들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밤과 낮’은 ‘희생’을 주제로 생각하고 만든 곡인데, “어떤 것을 엄청 사랑하게 되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기록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던’은 내 매우 힘들 때 만난 인연을 향한 고마움을 담은 곡이고, ‘4월의 그대는’은 봄에 관한 설렘이 없던 시절에 다들 봄 얘기를 하니 “흥!”하는 감정을 담은 곡이다. ‘청첩장’은 20대를 넘어 누군가의 가족으로 떠나가는 인연에 대해 쓴 곡이다. 곡마다 특징이 있으니 그 부분을 생각하고 들으면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알레그로 2집 [사라지는 것들:Full] 재킷 이미지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또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집중해 들어줬으면, 혹은 이 부분만큼은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가?
‘기록’과 ‘솔직함’에 가장 집중했다. 이 앨범은 오롯이 내 이야기이므로, 솔직한 감정을 담아보려 했다. 또한,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30대에 가감 없이 느낀 감정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그 감정이 약간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앞으로 다시 없다. 조선 시대 사관 같은 느낌으로 기록해 최대한 기억하는 내에서 감정을 표현해보려고 했다.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를 꽤 공들여 만든 인상이다. 작업 과정을 듣고 싶다.
이번 앨범 발매를 준비하면서,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것을 좀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걸 안 해봤나 생각해보니까, 뮤직비디오가 딱 생각이 났다. 이번에 뮤직비디오를 처음 작업하면서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음악뿐만 아니라 영상을 많이 공부하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감독과 스태프를 비롯해 손종빈, 최연수 배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줬다. 경주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담아보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한 터라 스태프와 배우 모두 노고가 많았다. 다들 정말 한 팀으로 너무 열심히 해줘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늘 듣는 지겨운 질문일 테지만, 직장 생활과 음악을 병행하는 일은 어떤가? 그리고 그 생활은 어떻게 곡에 영감을 주는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음악과 생업을 병행하고 있는 줄로 안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해보자면,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생활이 상호보완적인 것 같다. 두 개의 삶은 서로 부족한 것들에 대해 영감을 준다. 가령 낮에 회사에서 일할 때는 완벽한 이성의 세계여서 오히려 좋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음악 작업을 할 때엔 너무 감성적이 되지 않도록 회사 생활이 이성적인 중심을 잡아 주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두 배로 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데, 둘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인지 나는 그럭저럭 그런 생활이 괜찮다. 가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힘든 경우도 있는데, 차분히 앉아서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다 해결이 됐다.

싱어송라이터 알레그로


음악으로 대중과 만난 지 10년가량 되지 않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매번 어찌어찌 싱글이든, 앨범이든 하나씩 발표하는 모든 순간이랄까. 어떻게 또 버티고 버텨서 또 하나의 기록물을 남기고 그것들을 팬들이 사랑해 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음악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뮤지션은 아닌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 뿌듯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웰메이드’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곡과 연주 모두 정성스럽게 작업했다는 인상을 준다. 참여한 연주자들과 엔지니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싶다.
‘웰메이드’란 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음악인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연주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준 밴드 멤버들이 함께 해 효율과 팀스피릿이 좋았다. 만날 같이 술만 먹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연주 때의 모습을 보면 다들 프로란 걸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 정말 고생해준 이지희 스트링 편곡 담당이나, 최초로 공동작업을 한 윤형로 프로듀서, 내 앨범을 언제나 잘 믹스해주는 국윤성 기사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피지컬 발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무엇인가. 팬들 입장에선 소장의 아쉬움이 있을 텐데.
사실 이 부분을 끝까지 고민했다. 요즘 음악 시장이 피지컬 발매가 점점 쉽지 않게 변하고 있어,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나을지 많이 고민했다. 뮤직비디오 발표와 피지컬 발매를 동시에 진행할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쉬움이 크지만 다른 방법으로 접점을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살아남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내 음악을 우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앞으로 많은 것들이 사라지겠지만, 나는 꼭 네 인생의 마지막까지 내 음악이 더 깊어지고, 그걸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그런 뮤지션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정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