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글 ‘지각인생’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다. 늦게나마 결혼을 한 손 교수와 달리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했다.
2011년의 마지막 날, 나는 방 넓이 비해 터무니없는 전세가를 자랑하는 원룸에 홀로 앉아 지난 10년 동안 내게 벌어진 주요 사건들을 회상했다.
2001년 12월 31일, 나는 삼반수(대학교를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돌입하는 재수를 가리키는 은어) 끝에 한양대 법학과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내가 한양대, 그것도 법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참으로 어이없었다. 당시 나와 함께 재수를 한 여자 친구는 법학과를 지망했는데, 수능시험 결과가 한양대 안정지원 가능 점수에 걸쳐있었다. 내가 받은 점수는 여자 친구보다 다소 높았다. 고민 끝에 나는 적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자 친구를 따라 한양대 법학과에 지원했다. 이토록 어이없는 대학 진학 사례는 아마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듬해 2월 나와 여자 친구는 나란히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22살에 또다시 대학 새내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여자 친구가 2008년 사법연수원 입소 후 내게 이별통고를 함으로써 비극으로 끝났다. 그 친구는 현재 부산에서 검사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2002년 12월 2일, 나는 훈련소에 입소했다. 내 또래들보다 1~2년가량 늦은 입소였다. 근시와 난시가 심해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은 나는 고향 대전으로 돌아와 27개월 동안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2005년 2월 25일 소집해제 후 나는 칼복학을 선택했다. 칼복학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제대 후 복학에 비해 1~2년가량 늦은 복학이었다. 나와 함께 전공수업을 듣는 2학년 복학생들 대부분이 나보다 1~2살 어렸다.
2009년 11월, 서른 즈음의 나는 고향에서 지방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홀로 계신 아버지가 걱정돼 선택한 낙향이었다. 더 이상 서울서 버틸 경제력도 없었다. 박봉이었지만 글과 가까이 살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백수 신세를 면했음에 안도했다. 남들보다 1~3년 늦은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2010년 2월, 나는 나이 서른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남들보다 2~3년은 늦은 졸업이었다. 고시 공부 때문에 여러 번 신청한 휴학이 늦은 졸업의 이유다. 졸업사진도 촬영하지 않고 졸업앨범도 신청하지 않는 나는 학과사무실에서 졸업장 한 장 달랑 받는 것으로 한양대와의 인연을 끝냈다. 참으로 초라한 졸업이었다.
2011년 12월, 나는 나이 서른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헤럴드경제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지방지 편집기자 만 2년 경력은 입사와 동시에 무(無)로 돌아갔다. 적게는 2년 많게는 3~4년이나 늦은 수습기자 입사다.
손 교수의 글을 다시 빌려 말하자면 내 지각인생의 원인은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지각인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비극적인(?) 연애사를 비롯해 어머니의 때 이른 별세, 숱한 시험 낙방 등 지각인생을 부추겼던 온갖 악재들은 취미로 머물렀던 글쓰기를 취미 이상으로 이끌어 나를 글쟁이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쏟아낸 이야기와 글들은 모교 문학상,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등의 결과물로 되돌아와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았다. 생각지도 않게 고향에서 언론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평생 동안 인연 맺을 좋은 사람들과 많이 만났고, 더 나아가 서울에서 제대로 한 번 기자로 일하고픈 욕심도 가지게 됐다. 그간 기자로 일하며 글쓰기로 벌은 봉급과 문학상 상금은 서울에서 빚 없이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도 만들어줬다. 되돌아가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나를 조금이나마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이 지각인생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나는 어제 서울역 롯데마트에 들러 얼어 죽지 않고 사스마와리를 돌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사들였다. 매장에서 방한내의를 고르던 나는 문득 서글퍼져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나이 서른둘에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지각인생을 자처하는 일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 이미 벌어진 일 앞에 하나마나한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난무했다. 나는 질문을 다시 또 다른 질문으로 주워섬기며 방한내의를 집어 들었다. 경찰서 기자실이 조금 덜 추웠으면 좋겠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년만에 찾은 블랙홀 콘서트 현장에서 (0) | 2012.12.31 |
---|---|
제4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수상자 구한나리 작가와 함께 (0) | 2012.07.12 |
정말로 안녕, 그리고 새 출발 (0) | 2011.12.27 |
충청투데이에서 보낸 마지막 날의 풍경 (0) | 2011.12.23 |
생애 첫 퇴사, 첫 이직 (0) | 2011.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