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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12. 3.



사실 나는 유튜브에 올라온 장강명 작가의 글쓰기 강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가끔 내게도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해줄 말이 많지 않아 난감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소설을 써왔다.
첫째 주제를 정한다.
둘째 마지막 장면을 정한다.
셋째 마지막 장면을 향해 열나게 쓴다.

이렇게 답하면, 상대방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정말 이렇게 써왔는데 어쩌라고!!
남들이 소설을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면, 조금 폼 나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글쓰기 강의를 이것저것 많이 찾아 시청했다.
장 작가의 글쓰기 강의도 그렇게 찾아 듣게 됐다.
그 강의가 책으로 나왔으니 사지 않을 수 있나.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체험에 바탕을 둔 조언인 만큼 흥미롭고 잘 읽히는 책이다.
장 작가는 글쓰기에 공식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글쓰기 방법을 제안한다.
개요는 어떻게 짜느니, 공모에 응모할 때 폰트와 제본은 어떻게 하느니 등 증명되지도 않고 지엽적인 설명은 이 책에 없다.
다수의 문학상을 석권한 유명 작가가 자신만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했을 거라고 기대하며 책을 구매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글쓰기가 만만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듯이 골프가 취미인 사람에게 프로가 되기에 늦었는데 골프를 뭐하러 치냐고 묻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 땅에는 글쓰기에는 대단한 재능이 필요하며,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그 재능에 실체란 게 존재하나?
학창 시절 짧은 글짓기나 동시 쓰기로 과연 그 사람의 글쓰기 재능을 판단할 수 있나?
당장 나부터도 학창 시절에 글짓기에서 칭찬 한 번 듣지 못했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긴 글을 한 번도 제대로 써 본 일이 없다.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니, 나는 단편에는 부적합해도 장편에는 그럭저럭 어울리는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학창 시절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장 작가는 당신이 타고난 재능을 가졌는 지 아닌 지는 작품을 몇 번 써봐야 안다고 부드럽게 조언한다.
쓸 사람은 쓰게 되고, 써야만 숨을 쉴 수 있다고 말이다.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데 망설이기만 해왔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용기를 주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