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앤솔로지에는 우울증을 테마로 쓴 단편 6편이 실려 있다.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앤솔로지보다도 마음속에 깊게 닿는 이야기와 문장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잔잔하게, 누군가에게는 격렬하게.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우울증의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
6편 모두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최민우의 '보라색 사과의 마음'과 조수경의 '알폰시나와 바다'다.
아마도 두 작품 속 주인공의 경험이 내 경험과 상당 부분 비슷했기 때문일 테다.
두 작품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낸 주인공, 가깝게 지냈던 사람의 자살로 충격을 받고 방황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지만, 끝까지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들은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뎠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별로 슬프지 않아 죄책감이 들고, 때로는 지독하게 슬퍼져 괴롭다.
때로는 지독하게 외로워 괴로워하다가도, 때로는 외로워지기 위해 모든 사람과 멀어진다.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혼자 멀쩡하게 살아가는 게 옳은 일인가 의문이 든다.
주인공들의 심정과 내 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비롯된 번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소설 읽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훌륭한 수단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읽을 때는 우울한데, 묘하게도 읽고 나면 우울함이 잦아드는 이야기들이었다.
소설이 무언가에 정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의문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짊어진 이들이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 인식해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너는 어떻게 지내니?"
소설의 역할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일기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 소설을 읽은 누군가가 "이건 소설 같지 않은데?"라는 의문을 품었다면, 그 의문은 아마도 억측은 아닐 것이라고 그에게 슬그머니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어디까지가 사실이냐는 물음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이 앤솔로지에 실린 남궁지혜의 단편 '당신을 가늠하는 일'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해 대신하고 싶다.
"너무 날 확정 짓지는 마."/"가늠하는 정도가 좋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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